항목 ID | GC408012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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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蔡宏 |
영어공식명칭 | Chae Goeng |
이칭/별칭 | 채안(蔡安),의길(義吉)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홍수 |
[정의]
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의길(義吉), 이름은 채안(蔡安)이고 채굉(蔡宏)은 아명(兒名)이다. 아버지는 공조 참의(工曹參議)에 증직된 채원희(蔡元禧)이다.
[활동 사항]
채굉[1568~?]은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가 살아 있을 때는 봉양에 정성을 다하고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부모의 이름을 빛나게 하였다. 아버지의 상(喪)을 당하자 즐겨 하는 술을 끊고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시묘(侍墓) 삼 년을 지냈다. 여막(廬幕)에서 삼 년을 지내면서 단 한 번도 집을 찾지 않을 정도로 효심이 지극하였다. 벼슬은 감무(監務)[종육품]를 지냈다.
[상훈과 추모]
채굉의 효행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조정에 알려지자 1681년(숙종 7)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라는 명(命)이 내려졌고 당시 현풍 현감(玄風縣監)이던 이세갑(李世甲)이 정려각을 세우고 기문(記文)을 지었다. 채굉의 효자 정려각(孝子旌閭閣)이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부리에 있었으나 1925년 5번 구마 국도를 개설할 때 헐어서 치워 버렸다. 당시 일제(日帝)는 채굉의 효자 정려각이 국유(國有)라는 구실을 붙여 보상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