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12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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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之運 妻 昌寧成氏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홍수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도 대구도호부 출신의 열녀.
[활동 사항]
밀양(密陽) 사람인 박지운(朴之運)의 처 창녕성씨(昌寧成氏)는 나이 18세에 혼례를 치른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이 죽었다. 그러자 비통한 마음에 눈을 감고 아무것도 보지 않으며 입을 닫고 곡기를 입에 넣지 않았다. 그런 성씨의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워 시아버지가 미음을 마시고 기운을 차려 눈을 뜰 것을 권하자 이렇게 말하였다. “지아비가 이미 죽었는데 눈을 뜬들 무엇을 볼 것이며 음식을 먹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버님께서 내려 주신 것을 제가 감히 받지 않으면 불효일 것이니 공경히 한 숟가락을 받겠습니다.”
하지만 성씨는 이내 삼킨 미음을 도로 토하였다. 성씨는 가까스로 눈을 뜨고 자신을 애처롭게 내려다보는 시아버지를 우러러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어버이의 얼굴을 한 번 자세히 살펴보고, 이제 지하에서 천년 동안 받들어 섬기고자 합니다.” 성씨는 다시 입을 봉하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그녀는 죽과 물을 끊더니 마침내 11일 만에 자진(自盡)하였다.
[상훈과 추모]
1794년(정조 18)에 정려(旌閭)를 내려 후손들이 건립한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 겹처마에 박공(牔栱)지붕으로 된 열부 창녕성씨 정려각(烈婦昌寧成氏旌閭閣)이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에 있다. 이곳에는 정조(正祖)가 하사(下賜)한 정려(旌閭) 이외에 정려각(旌閭閣)을 세울 당시의 기문(記文)과 근래에 세운 높이 135㎝, 폭 47㎝, 두께 16㎝의 오석(烏石)으로 된 비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