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12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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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履常 妻 居昌愼氏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홍수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도 현풍현 출신의 열녀.
[가계]
본관은 거창(居昌). 아버지는 호조 판서(戶曹判書)에 추증된 신희양(愼希讓)[1536~1583]이다.
[활동 사항]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존재(存齋) 곽준(郭䞭)[1551~1597]은 안음 현감(安陰縣監)으로 두 아들 곽이상(郭履常)·곽이후(郭履厚)와 함께 황석산성(黃石山城)에서 왜적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최후를 마쳤다. 곽씨 집안은 황석산성의 전투에서 부자가 모두 순국하는 비극을 당하였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죽은 두 아들 중 맏이인 곽이상의 처인 거창신씨(居昌愼氏)가 지아비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자결하였다. 거기에다 곽준의 딸로 유문호(柳文虎)에게 시집을 간 곽씨가 친정집의 비보를 들은 데다 전쟁에 나간 남편마저 전사하자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이렇게 한 집안에서 다섯 사람이 연이어 순사(殉死)한 사실이 조정에 알려졌다. 그러자 1598년(선조 31) 선조(宣祖)가 일문삼강(一門三綱), 즉 한 집안에서 세 가지 근본 윤리를 바로 세웠다는 말과 함께 정려(旌閭)를 하도록 명을 내리어 신씨의 행적을 온 세상에 나타내도록 하였다.
[상훈과 추모]
신씨의 정려(旌閭)는 현풍 곽씨 문중의 다른 정려들과 함께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지리 1348-2번지[지동길 3호]에 위치한 현풍 곽씨 십이정려각(玄風郭氏十二旌閭閣)에 봉안되어 있다. 현풍 곽씨 십이정려각은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29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신씨의 행적을 찬술한 「열부 거창신씨 찬(烈婦居昌愼氏贊)」이 곽종석(郭鍾錫)[1864~1919]의 『면우집(俛宇集)』 권144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