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13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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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史保淡 |
영어공식명칭 | Richard H. Sidebotham |
이칭/별칭 | 리차드 사이드보텀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개항기 달성군 화원읍 사문진 나루터를 통해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를 들여온 영국인 선교사.
[활동 사항]
사보담(史保淡)[1874~1908]은 1874년 영국에서 출생하였다. 사보담은 리처드 헨리 사이드 보텀(Richard Henry Sidebotham)의 한국식 이름이다. 사보담은 목사로 임명된 후 미국북장로교의 해외 선교사로 파견되어 부인인 에피 앨든 브라이스(Effie Alden Bryce)[1876~1942]와 함께 1899년(고종 36) 한국으로 들어왔다. 사보담 부부는 1899년 11월 23일부터 1900년(고종 37)까지 대구 지부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고 이후 부산 지부로 옮겨 1907년(순종 1)까지 7년 동안 열정적인 선교 활동을 벌였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1900년 3월 26일 부산에서 낙동강을 이용해 화원의 사문진(沙門津) 선착장[현 화원 유원지]으로 국내 최초의 피아노를 들여왔다. 이 피아노를 짐꾼 20여 명이 사흘간 대구 중구 종로의 사보담 부부 집으로 옮겼는데, 당시 이상한 소리가 나는 물건이라고 해서 ‘귀신통(鬼神桶)’으로 불리었다. 이 피아노의 실제적 주인은 사보담의 아내 에피 앨든 브라이스이었다. 에피는 처녀 시절부터 교회에서 피아노 및 오르간 연주를 맡았으며, 동네에서 음악 교실을 운영하면서 생활하였다고 전한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보담 부부는 피아노를 가져와서 어린이 성경 공부방을 운영하던 집에서 피아노를 활용한 선교와 교육을 하였다.
이처럼 피아노를 활용한 교육과 선교는 사보담 부부에 의해서 처음 시작되었지만, 대구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활용한 음악 교육 및 종교 활동이 시작된 것은 1901년 5월 에디트 파커 존슨(Edith Parker Johnson)이 들여온 피아노를 대구 신명 여학교에 기증한 이후이다.
사보담은 1907년 안식년으로 귀국하였지만 선교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가졌으며 한국 선교를 위한 기금 모금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1908년 12월 3일에 미국에서 우연한 가솔린 폭발 사고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