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1440 |
---|---|
한자 | 仁壽文庫 |
영어공식명칭 | Insu Mungo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인흥3길 16[본리리 401-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은영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있는 남평 문씨 가문의 서고.
[개설]
남평 문씨가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인흥 마을에 본격적으로 세거지를 형성한 것은 인산재(仁山齋) 문경호(文敬鎬)[1812~1874]때였다. 현재의 인수문고는 문경호의 손자와 증손자인 후은(後隱) 문봉성(文鳳成)[1854-1923]과 수봉(壽峯) 문영박(文永樸)[1880~1930] 부자가 세운 광거당(廣居堂)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들 부자는 1910년 자제들의 학문과 교양을 쌓기 위해 광거당을 지어 책을 수집하고 선비와 후손들이 공부할 수 있는 장소로 삼았다. 만권(萬卷)의 전적을 소장하였으며 국내의 많은 학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이후 1970년에 수봉 정사(壽峰精舍) 구내에 존안각을 지었는데, 이곳에서 수봉 정사의 서책과 광거당의 만권의 서책을 통합하여 보관·관리하게 되었다. ‘인수문고’라 명명한 것도 존안각으로 옮겨 관리한 이후이다.
지금의 인수문고 위치로 옮겨진 것은 1982년이다. 국고 보조로 비좁았던 존안각을 헐고 수봉 정사 옆에 있던 밭에 서고 건물을 새로 지어 인수문고의 서책을 보관하였고, 인수문고 서책을 열람하고 그 내용을 담론하기 위한 건물로 거경 서사(居敬書舍)를 함께 신축하였다. 1993년에는 20세기에 간행된 한국학 관련 장서를 보관하기 위해 중곡 서고(中谷書庫) 한 동을 지어 완전한 체계를 갖추었다.
[구성/내용]
2007년 조사 당시 고서는 모두 1,342종 8,556건, 고문서는 6,814건, 책판은 5종 558판, 유물은 신주함, 문갑, 벼루, 도자기 등으로 27점이며, 현판은 모두 27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것은 중곡 서고에 보관되어 있는 현대서 3,961종 5,590책을 제외한 것이다. 고서의 경우 『주자 어류 대전(朱子語類大全)』·『주자 행장(朱子行狀)』·『고려사(高麗史)』·『세설신어(世說新語補)』·『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육율분운(陸律分韻)』·『당송팔자백(唐宋八子百)』·『예기집설대전선(禮記集說大全選)』·『사마온공경진계고록(司馬溫公經進稽古錄)』·『서애응고악부(西涯擬古樂府)』·『풍요속찬(風謠續選)』·『경국대전(經國大典)』 등과 같이 내사본(內賜本), 귀중본, 왕실 서적 등이 완질로 잘 남아 있다. 시기적으로는 17~18세기 간행본도 다수 있지만, 대체로 19세기에 간행된 서적들이 대부분이다.
책판은 1926년 간행된 문박(文樸)이 편찬한 『경정공 사적 척록(敬靖公事蹟摭錄)』판목 46장, 1930년 문박이 편찬한 『충숙공 실기(忠肅公實紀)』판목 22장, 1924년에는 오광운(吳光運)[1689~1745]의 문집『약산 만고(藥山漫稿)』를 후손 오병서(吳炳序)가 편찬·간행하였는데, 현재 54장이 있다. 이상정(李象靖)의 「결송장」에 손자인 이병원(李秉遠)이 학설을 보충한 『결송장보(決訟場補)』는 1926년 문원만(文元萬)이 간행하여 현재 121장이 있다. 박치복(朴致馥)[1824~1894]의 문집인 『만성 선생 문집(晩醒先生文集)』은 1925년 광거당에서 판각하여 간행한 것으로, 현재 315장의 판목이 남아 있다. 고문서는 간찰과 명문(銘文) 및 영수증 등이 대부분인데 특히 간찰은 주로 달성에 거주하는 인사들과 교류한 것이 많다.
[의의와 평가]
인수문고는 문중 문고로서의 가치가 높고 지역성에 편협되지 않은 수장 범위를 가진다. 또한 사료적 가치가 높은 서책 및 명인들의 진적 서화첩과 비첩류가 많아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높다. 이들 자료는 우리나라의 문화 발달 과정과 당시 지역 사회의 문화 수준을 보여 주는 기록으로서 한국학 연구에 중요한 기초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