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16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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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해랑 어미와 도깨비 징검다리」,「해랑교 전설」,「도깨비 다리」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박곡리|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방천리 |
집필자 | 박은정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2년 - 「도깨비 징검다리」『한국 구비 문학』Ⅱ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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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4년 - 「도깨비 징검다리」『대구의 뿌리 달성』에 수록 |
관련 지명 | 해랑교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박곡리와 방천리 사이 |
관련 지명 | 도깨비 다리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박곡리와 방천리 사이 |
관련 지명 | 여진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박곡리와 방천리 근처 |
성격 | 전설|교량 전설|효행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해랑 어미|해랑|사위|건너 동네 홀아비 |
모티프 유형 | 홀어머니의 모정|딸의 효행|다리 조성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박곡리와 방천리에서 해랑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도깨비 징검다리」는 박곡리와 방천리 사이를 가로지르는 다리인 해랑교(海娘橋)를 조성하게 된 내력을 전하는 교량 전설이다. 이를 「해랑 어미와 도깨비 징검다리」,「해랑교 전설」,「도깨비 다리」 등이라고도 한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김광순이 편찬하고 국학 자료원에서 발행한 『한국 구비 문학』Ⅱ에 실려 있다. 2014년 달성 문화 재단과 달성 군지 간행 위원회에서 간행한 『대구의 뿌리 달성』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내용]
달성군 다사읍 박곡리와 방천리 사이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하나 있는데, 이 다리의 이름은 '해랑교’이다. 동네 사람들은 '도깨비 다리'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동네 사람들에 따르면 이 다리를 도깨비들이 사흘 밤 동안 놓았다고 하는데, 그 사흘 밤 동안에는 돌을 움직이는 소리가 시끄럽게 났으며, 이 다리는 도깨비가 놓아서 그런지 아무리 심한 홍수가 나도 떠내려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 다리에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낙동강 상류까지 배가 왕래하던 시절, 많은 배들이 물건을 싣고 부산에서부터 이곳까지 자주 다녔으며, 이 강가에 배를 매었기 때문에 지금도 이곳을 여진(驪津)이라 부른다. 나루터가 생기니 자연 사람들도 많이 모이게 되고, 장터도 생기게 되었다. 어느 날 부산에서 오는 소금배가 여진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 배에서 한 여인이 어린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나루로 내려왔다. 그 여인은 초라하게 옷을 차려입고 풍상에 시달린 듯이 보였으나 생김새가 제법 괜찮았다. 그 여인은 부산에서 올라온 사람으로서 남편을 잃고 어린 자식을 데리고 의지할 데 없이 다니다가 마침내 이리로 오게 된 것이다. 얼마 되지 않아 그 여인은 이 나루에다 주막을 차리게 되었다. 어린 딸의 이름이 해랑이어서 동네 사람들은 그 여인을 해랑 어미라 불렀다.
해랑 어미는 장사에도 열심이었고, 동네에서도 인심을 얻게 되었다. 젊은 나이에 외롭게 지내기는 어려웠으나 뭇 홀아비의 청혼도 거절하고 오로지 돈벌이와 해랑이를 키우는 데만 힘을 썼다. 지성이면 감천인지 해랑이는 점점 예쁘고 마음씨 착하게 커가고, 해랑 어미는 돈을 많이 모으게 되었다. 해랑 모녀가 이곳에 온 지도 어언 10년이 되었다. 해랑 어미는 강 건너에 땅을 사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고, 데릴사위를 보아 해랑을 혼인시켰다. 사위를 보고 이제 한시름 놓은 해랑 어미는 농사짓는 데 전념을 하였다. 하루는 연장을 들고 강을 건너가다가 건너 동네에 사는 어떤 홀아비를 보게 되었다. 그러자 문득 자기의 신세에 대한 외로움이 솟구치게 되었다. 그 이후로부터 강 건너 논에 갈 때마다 그를 보게 되고, 둘은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게 되었다. 서로의 심정을 이해하고 가까이 지내게 되니 해랑 어미의 얼굴은 한층 밝아졌다. 이후 두 사람은 남의 눈을 피해 밤에 서로 만나게 되었다.
어머니가 밤에 외출이 잦자 해랑과 그의 남편은 어떤 일이 있는지 궁금하게 생각하였고, 어머니의 행동을 주시하여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후부터 어머니가 자유롭게 행동하시도록 모른 척하고 있었다. 사위와 해랑은 물길이 세찬 내를 매일 건너다니는 어머니가 걱정이 되었다. 날씨가 점점 차가워지자 발을 걷고 그 내를 건너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리하여 해랑과 그의 남편은 의논 끝에 어머니와 동네 사람 몰래 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밤마다 어머니가 건너가고 난 뒤에 몰래 강가에 가서 돌을 들어다가 징검다리를 놓기 시작하여 며칠 만에 완성하게 되었다. 해랑 어미는 누가 놓은 것인지 모르는 다리를 밟고 쉽게 내를 건너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마침내 자식들의 양해를 얻어 재혼을 하게 되었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며칠 밤사이에 놓인 이 다리를 고맙게 여기며 건너다니게 되었고, 해랑과 그의 남편이 함께 놓은 줄 모르고 도깨비가 밤에 몰래 놓은 것이라 하여 도깨비 징검다리라고 불렀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해랑 부부가 놓은 다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다리는 홍수가 나도 떠내려가지 않자 동네 사람들은 도깨비가 놓아서 그렇다고 더욱 믿게 되었지만, 이 다리는 실로 해랑의 효행으로 놓인 다리인 것이다. 이후 새로 다리를 놓을 때 ‘해랑교’라고 명칭을 붙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도깨비 징검다리」의 주요 모티프는 '홀어머니의 모정', '딸의 효행', '다리 조성' 등이다. 홀어머니의 외롭고 힘들었던 젊은 날을 알기에 딸 부부는 노년에 찾아온 어머니의 사랑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남몰래 다리를 놓았다는 효행 전설이기도 하다. 설화 전승자들은 어머니의 즐거움을 돕고자 한 딸 부부의 용기와 헌신에 찬사를 보낸다. 해랑교는 사랑의 다리이자, 효행의 다리이며, 지역민들에게는 왕래를 도와주는 고마운 다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도깨비 징검다리」는 효나 정절 같은 유교의 가치보다 어머니와 자식 사이의 진한 사랑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공간을 초월한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