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1657 |
---|---|
한자 | 洛濱書院 |
영어공식명칭 | Nakbin Seowo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다원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서 낙빈서원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낙빈서원」은 1679년 박팽년(朴彭年)[1417∼1456]·성삼문(成三問)[1418∼1456]·이개(李塏)[1417~1456]·유성원(柳誠源)[?~1456]·하위지(河緯地)[1412∼1456]·유응부(兪應孚)[?∼1456] 등 사육신의 절의를 추모하기 위해 사우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시게 되었다는 서원 창건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2년 달성군에서 편찬한『달성 군지』에 「낙빈서원」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으며, 이후 2014년 달성 문화 재단과 달성 군지 간행 위원회에서 간행한 『대구의 뿌리 달성』 하빈면 전설 항목에도 동일한 제목으로 『달성 군지』의 내용을 보강하여 수록하고 있다.
[내용]
낙빈서원은 조선조 19대 숙종 17년에 건립된 서원이다. 이 서원을 건립한 것은 충정공의 현손인 계창이 기일을 맞아 꾼 꿈 때문이다.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계창이 기일을 맞아 분향할 즈음에 비몽사몽간에 충정공 이외에 다섯 선생이 같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깨어 보니 꿈이었다. 꿈에서 깬 후 계창은 다섯 선생이 충정공과 같이 온 모습을 떠올리며 '충정공을 따라 들어온 다섯 선생이 아마 혈손이 없어서 함께 들어오셨는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다섯 분의 제수를 마련하여 그날 저녁 함께 제사를 모셨다. 그것이 유래가 되어 그 후 한강 정구 선생이 "사가에서 여러 분의 위(位)를 한꺼번에 모실 수가 없으니 따로 사당을 지어 여섯 분을 함께 모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숙종께 아뢰게 된다. 숙종이 이를 듣고 한강의 간언을 받아들여 하빈면 묘리에 자리를 잡아 사당을 지으라고 명하여 지은 것이 낙빈서원이다. 그 후 줄곧 봉향을 해오다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잠시 철폐되었으나, 고종 말년에 유림들이 그 유지에다 당을 세워 오늘날까지 보존하고 있다.
[모티프 분석]
「낙빈서원」의 주요 모티프는 '꿈', '계시' 등이다. 「낙빈서원」은 박팽년의 후손인 계창(繼昌)의 꿈을 통해 자손이 없는 다섯 사람의 제사를 함께 모시라는 계시를 내린 것으로 '꿈'의 계시적 기능을 활용하고 있다. 또한 '꿈'은 박팽년이라는 인물을 한층 부각시키는 기능 또한 담당하고 있다. 즉, '낙빈서원'이라는 증거물을 통해 자손들은 가문에 대한 위상을 한층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