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16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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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貴妃寺- 由來 |
영어공식명칭 | Gwibisa's origi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지리 |
집필자 | 박다원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지리에서 귀비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귀비사의 유래」는 달성군 현풍읍 지리에 있던 귀비사(貴妃寺)에 빈대가 많아 스님들이 절을 불태우고 떠나가자, 이로 인하여 절이 망해서 귀비사 터[지리 귀비사지]만 남아 있을 뿐이라는 사찰 폐사담이다. 또한 궁중에서 쫓겨나 불쌍하게 살다간 옹주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는 불산제 유래담이기도 하다.
[채록/수집 상황]
1992년 달성군에서 발행한 『달성 군지』의 현풍면 설화 항목에 실려 있고, 2002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국학 자료원에서 간행한 『한국 구비 문학』Ⅱ에 동일한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또한 2014년 달성 문화 재단과 달성 군지 간행 위원회에서 간행한 『대구의 뿌리 달성』의 화원읍 설화 항목에도 실려 있다.
[내용]
현풍읍 지리 뒤의 대니산 부근에 위치한 귀비사 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약 천 년 전 고려태조 왕건 시대 이름을 알 수 없는 옹주 한 분이 내침을 당하여 전국을 유랑하던 중 이곳을 지나다가 산수가 수령함을 보고 절을 세웠다고 한다. 귀비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절은 여승들만 수도하던 곳이라 산 이름도 정상에 여승의 수도장이 있다고 하여 대니산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귀비사의 동북쪽으로 뻗은 능선이 세인의 눈을 피해 외부와 통하던 여승들의 유일한 통로였으며,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면 끝부분이 차천에 닿아 있다. 차천이라는 냇물을 건너면 현풍으로 통하기에 교각으로 돌을 쌓고 통나무를 걸친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여승들이 전용하는 다리라 하여 이 다리를 중다리라 불렀다고 전한다. 1976년 차천 호안 제방이 축조되기까지만 해도 돌 교각 위에 나무를 걸쳐 농로로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 절은 120년간 존손했다고 전해진다. 귀비사에는 빈대가 너무 많아 이를 박멸하려고 하면 빈대가 더욱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 그 원인은 부정한 사건으로 왕의 분노를 산 나머지 궁중에서 내침을 당한 옹주가 세운 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옹주의 부정이 세인들의 지탄의 대상이라서 옹주의 잔재를 깡그리 없애기 위해 빈대가 그토록 극성을 부렸다고 한다. 결국 빈대의 극성을 이기지 못한 여승들은 끝내 절을 불태우고 이곳을 떠나는 비운을 맞아야만 했다. 여승들이 떠나면서 산 아래 있는 원당 마을에, 내침을 당하여 불쌍하게 살다간 옹주의 넋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잊지 말고 불산제를 지내달라고 당부하면서 논 10여 마지기를 사주었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대보름 전날 저녁에 엄선된 제관이 극진히 정성을 들여 불산제를 모시고, 이튿날인 보름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음복을 즐기며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고 흉년이 겹치는 고난 속에서도 불산제만은 정성껏 지내왔는데, 마을 재정이 너무나도 궁핍하여 여승이 사준 논까지 팔게 되었고, 제사의 규모는 축소되었다. 그러나 수백 년을 내려오는 동안 정성들여 모셔 오던 작은 규모의 제사나마 시대의 물결에 밀려 몇 해 전부터는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약 80여년 전까지만 해도 주춧돌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곳 절터에 가면 무수히 깔려 있는 돌 밑에 하얗게 바랜 빈대 껍질이 수없이 달려 있어 기구했던 지난날을 말해 주고 있다. 지금 이곳은 무성한 나무들에 뒤덮여 골짜기에 들어서는 여승들의 목탁 소리가 들리는 듯하며, 지금까지도 면면히 그들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모티프 분석]
「귀비사의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빈대로 인한 폐사', '불산제 유래' 등이다. 빈대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부정적인 생물이다. 전승 집단은 옹주의 부정을 '빈대'에 투영시켜 옹주를 비판하고 있다. 즉, 옹주의 부정은 빈대처럼 처단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비사의 유래」는 옹주의 넋을 기리기 위해 불산제를 열심히 지냈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니, 여기에서 소박하고 정감 있는 민중 의식 또한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