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A010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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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마을/마을 이야기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 다리목마을 |
집필자 | 박경용 |
[정의]
금계초등학교를 졸업한 마을 인재들
[분교 시절의 금계초등학교는 ‘두 가지 땀’을 흘린 곳]
금계초등학교의 교명은 맞은편에 있는 금계산(金鷄山)에서 따온 것으로 1966년 정식으로 개교하였으나, 1962년부터 4년 동안은 옥포 초등학교 금계 분교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었다.
당시 졸업생들에게 금계초등학교는 ‘두 가지의 땀’을 흘린 곳이다. 하나는 육체적인 땀이다. 1962-1965년까지 금계 분교 시절은 TV에서나 볼 수 있는 아프리카의 어느 시골학교와 흡사하였다. 교실이 없어 동사무소를 빌리거나 일부 학급은 야산에 칠판을 걸어 놓고 수업을 하였다. 어린 동생을 데리고 오거나 개구리를 잡아온 학생도 있었고, 농번기가 되면 반 정도는 결석하는 등 어느 코미디 프로의 봉숭아학당과 같은 풍광이었다.
그 과정에서 금계초등학교를 신축하는 일이 진행되었는데 매일 콘크리트 자재인 자갈을 시냇가에서 책보자기에 담아 날랐고 운동장 다지기에 매달렸다. 사실 공부는 뒷전이었다. 학교가 개교되면서 비바람을 피할 수 있어서 좋았고, 새 교실과 새 책상이 신기해서 집에도 가질 않고 청소했다.
두 번째는 정신적인 땀이다. 당시는 중학교도 시험을 쳐야했는데 4년 간 거의 자유분방한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학생들의 학력이 많이 뒤쳐졌다. 당시 신설학교에 부임해 오신 선생님들의 열의가 대단했었다. 담임선생님은 학교 근방에 하숙을 하면서 거의 매일 밤늦게까지 야간 학습을 지도해 주셨다. 그 덕에 한명도 낙오 없이 1968년 첫 회에 100명이 모두 졸업할 수 있었다. 이 중 50여 명이 중학교를 진학할 수 있었으며, 10여 명은 대학을 졸업했다.
[중소기업청장을 지낸 제1회 졸업생 송종호]
금계초등학교에서는 낙교재(洛橋齋) 서당의 권학(勸學) 전통과 금계산의 정기를 받아 수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대표적으로는 차관급 관료 출신인 제1회 졸업생 송종호(宋宗鎬) 전 중소기업청장을 들 수 있다.
그는 1956년 12월 6일에 교항리 1254번지에서 태어서 계성중·고, 영남대 전기공학과를 다녔다. 기술고등고시 수석 합격으로 공직에 입문하여 상공부와 중소기업청 과장 및 국장을 거쳐 청와대 비서관, 중소기업 진흥공단 이사장 및 중소기업청장까지 지냈다.
그는 1997년 우리나라 최초로 ‘벤처기업 육성 정책’을 입안한 벤처 정책의 창시자로 창업에서 투자 및 코스닥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에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중소기업 기술 혁신 개발 사업 입안, 전통시장 온누리 상품권 발행 등의 정책들도 관련 부처 국·과장 시절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들이다.
송 전 청장은 2013년 퇴임 후에도 경일 대학교 석좌 교수, 대경벤처 창업 성장재단 이사장으로 근무하면서 대구·경북 지역의 중소기업 육성과 대학생 창업 교육에 힘쓰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육성과 청년 창업이 유일한 길이라는 확고한 소신을 가지고 있다. 그가 저술한 『벤처 창업에서 코스닥까지』(1999), 『벤처의 태동과 성장, 그리고 미래』(공저, 2007), 『송종호가 꿈꾸는 중소기업 세상』(2015) 등은 이러한 소신을 실천하기 위한 자산이다. ‘두드리면 열린다’는 성경의 말처럼, 노력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좌우명 ‘유구필응(有求必應)’은 그의 새로운 성취를 기대하게 만든다.
[금계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인재들]
금계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2,500여 명의 금계초등학교 졸업생들 중에는 송종호 전 중소기업청장 외에도 많은 인재들이 사회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을 졸업한 회수별로 열거해보면, 1968~1970년까지 졸업생으로는 조성미 대구 월촌초등학교 교장(1회)을 비롯하여 윤순덕 경북도청 사서 사무관(2회), 김상률 태봉사 대표(2회), 윤종관 육군 소령(2회), 윤재근 대구경북 원예조합장(3회) 등이 있다. 이후로는 윤도화 한겨레 중고등학교 교장(7회), 윤규동 서울보증보험 대구지점장(7회), 박용태 해설레이저 대표이사(7회), 신기진 영남상조 대표이사(8회), 김원주 ㈜코로나텍스타일 대표이사(9회), 황순철 부장검사(11회) 등을 들 수 있다.
금계초등학교 인재들은 분교에서 출발한 농촌학교라는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한계를 극복하고 교가(校歌)의 가사처럼 ‘금계의 슬기로운 일꾼’으로 성장했다. 분교 시절 흘렸던 ‘두 가지 땀방울’이 성장의 초석이 되었다는 제1회 졸업생의 말이 되새겨진다.
“나에게 금계초등학교는 성장의 초석을 마련해 준 곳입니다. 만일 금계초등학교가 개교되지 않아, 금계 분교에서 졸업을 했더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입니다.”(송0호)
[참고 문헌]
송종호, “금계초등학교에 대한 회고”, 2016
대구 금계초등학교(http://www.taegu-kg.es.kr)
[정보 제공자]
김0률(남, 1957년생, 대구광역시 달서구 송현동 전 금계초등학교 총동창회 회장)
송0호(남, 1956년생,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 전 중소기업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