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A030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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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마을/마을 이야기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 다리목마을 |
집필자 | 박경용 |
[정의]
선조의 고향 찾아 되돌아온 김덕공
[일제 강점기 할아버지가 강원도 철원 이사]
1932년생인 김덕공은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할아버지가 식솔을 데리고 강원도 철원군 어운면 홍원리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생명을 부지하기 힘든 시절, 할아버지는 오로지 먹고 살 길을 찾아 다리목 마을로부터 생면부지의 이곳에 정착했다. 당시는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휴전선으로부터 60~70리나 이북으로 들어간 지역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3형제 중 막내였다. 할아버지는 상속 받은 토지로는 가족들의 생계가 막막했기 때문에 이주했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그곳에서 상당 규모의 공용 토지를 경작하여 살아나갔다. 수확량의 ⅓은 세금으로 납부하고 나머지 ⅔는 자가 취득했다. 당시 일반 소작 관행에 비하면 상당히 좋은 조건이었다.
[6.25전쟁 때는 인민군으로 낙동강까지 남하]
그는 일제 강점기 늦은 나이에 초등 학교에 입학하여 해방되던 해 4학년까지 다녔다. 이 무렵은 황국 신민화(皇國 臣民化) 정책으로 학교에서는 조선말과 조선어를 쓰지 못하게 하고 조선 역사를 가르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일본어만 사용하고, 집에 와서야 비로소 우리말을 할 수 있었다.
해방이 되자, 더 이상 학교가 유지되지 못해 공부도 끝이 났다. 농사를 거들며 지내던 중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났다. 북한 인민군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와 한 달여 만에 낙동강까지 다다랐다. 이때 그도 북한 인민군에 강제 징집되었다. 그는 인민군 4사단 18연대에 배속되어 경남 의령군 궁유면 평촌리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동 년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으로 전세가 뒤바뀌어 북으로 퇴각했다. 인민군 패잔병의 일원으로 충청북도 문익 부근에서는 한국군과 전투를 벌였다. 그 과정에서 포로가 되어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서 2년 동안 생활하다 반공 포로로 남한에 남게 되었다.
[다리목 마을 귀향과 국군 입대]
그는 반공 포로로 충남 논산에 수용되어 1년가량 생활하던 중 다리목 마을의 재종에게 편지를 보내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어머니와 두 여동생이 다리목 마을로 되돌아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는 해방 무렵 철원 땅에서 타계하고, 누나도 6.25 전쟁 전 북한 땅에서 결혼하였다.
그는 24세 되던 1955년 선조들의 고향인 다리목 마을로 되돌아와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6.25 전쟁이 일어난 지 꼬박 5년이 지난 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곧바로 국군에 입대하여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고 경기도 연천 1사단에서 복무하였다.
군 제대 후 그는 땅 한 뙈기 없는 상황에서 26세에 결혼해서는 줄곧 남의 땅을 소작해서 생계를 꾸려나왔다. 소작료는 논 한 마지기 당 쌀 3~4말씩이었는데, 20여 마지기의 땅을 소작했다. 1960년대 초부터 시작된 낙동강 제방 공사장에서도 4년가량 일했다. 딸 하나를 포함한 세 식구가 근근이 살아나올 수 있었다. 그는 10여 년 전까지 소작 농사를 지었다. 먹고 살기 바빠 평생 땅 한 평 구입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산가족, 외롭지만은 않아]
그는 선조들의 숨결이 배여 있는 고향으로 되돌아왔지만, 내내 이산가족으로 살아왔다. 강원도 철원 이북 땅에 산자와 죽은 자를 포함한 가족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6.25 전쟁 이전 두 명의 고모와 누나가 그곳에서 결혼하여 남겨졌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의 묘소도 그곳에 남아 있다. 이북에 남겨진 누나를 찾기 위해 남북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내 나이가 이러니 인제 틀렸어요. 언제 통일 돼서 누님을 찾고, 조상 산소를 찾겠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묘가 북한 땅 철원 공동 묘지에 있는데 …… 눈에 선해요.”(김덕공)
그는 2대 독자로 4촌이 없는 상황에서 2명의 여동생이 서울과 다리목 마을에 각 1명씩 살고 있다. 무남독녀인 딸은 인근 고령으로 시집가서 살고 있다. 부양해줄 자식이 없어 지금은 기초 생활 수급자로 지정되어 정부의 지원으로 살아나간다. 조상들의 고향에서 전해지는 온정 속에서 결코 외롭지만은 않다.
[정보 제공자]
김덕공(남, 1932년생, 대구 광역시 달성군 옥포면[현 옥포읍] 교항리 다리목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