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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운동을 전개한 사람.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의 한국 침략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거나 일제 강점기에 국내외에서 일제에 저항한 사람들이다. 독립운동의 범위는 한일 병합을 기점으로 앞선 시기에는 크게 계몽 운동과 의병 운동으로 설정할 수 있고, 이후 시기에는 국내외 무장 투쟁, 3·1운동, 노동·농민·학생 운동 등 대중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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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을 진주(晉州). 자는 성윤(聖允), 호는 혜사(蕙社). 백하(白下) 강의영(姜宜英)의 아들이다. 1890년(고종 27)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를 제수 받았고 그 후 여러 요직을 역임하였다.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1905년(광무 5) 1월 동지들과 일본 공사관에 공개장을 보내어 불법을 지적하고 규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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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0년 10월 17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일대의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의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운동 대구 거사가 준비 중인 3월 7일,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인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 20매를 등사해 가지고 인동교회 목사인 이상백(李相佰)을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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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칠곡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 운동가. 권영해(權永海)는 1888년(고종 25) 8월 12일 경상북도 대구시 내당동[현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 있는 진평 교회 목사로 재직하였다. 1919년 3월 12일 진평동 뒷산에서 진평동민 200여 명을 규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고, 이틀 뒤인 3월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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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호는 백인(百忍). 아버지는 권상근(權相瑾)이다. 권쾌복(權快福)은 1921년 2월 2일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시미동[현 경상북도 구미시 시미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사범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1년 2월 15일 민족 문화 육성 등 다방면에서 실력을 양성하여 독립을 촉진할 목적으로 문홍의(文洪義)·배학보(裵鶴甫) 등과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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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8년 1월 3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일원의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의 언도를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3월 7일 대구에서 계성학교(啓聖學校) 동창인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 20매를 등사해 와서 진평동의 김도길과 기독교 청년 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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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6년 5월 13일 칠곡군 인동면 인의동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운동 때 인동면 진평동의 만세 시위를 선도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운동 때 인동면 진평동의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의 학생인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를 가져오자 김도길(金道吉)·박봉술(朴鳳述) 등의 동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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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5년 9월 12일 칠곡군 약목면 복성동[현 복성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 약목장터에서의 만세시위를 계획하다가 일본 군경(軍警)에게 계획이 탄로나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만주 용정(龍井)에서 6년 반을 지내다 1918년에 귀국하였다. 그 후 1919년 3월 11일 칠곡군 북삼면 숭오동의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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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3년 1월 20일 칠곡군 약목면 덕산동에서 도상필(都相弼)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자는 계현(啓賢), 호는 동포(東浦)이다. 대구 계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독립군 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1927년 신간회(新幹會) 칠곡지회를 결성하여 민족교육운동을 폈다. 1945년에 체포되어 연행 도중 낙동강에 투신 순국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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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0년 8월 15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일원의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의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운동 때,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 20매를 진평동의 이상백(李相佰)에게 가져와 거사일을 3월 12일로 정하고 전날 태극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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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5년 10월 17일에 칠곡군 지천면 덕산동[현 덕산리]에서 태어났다. 서울 휘문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내선일체(內鮮一體)를 거부하고 일본의 패전을 예견하여 민족의식 교육에 주력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을 받았다. 1943년 9월에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을 졸업한 후, 휘문중학교(徽文中學校) 교사로 근무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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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73년 6월 16일에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일원의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의거 때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의 이상백(李相佰)을 중심으로 동지들과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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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3년 6월 15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전국적인 3·1운동 때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11일 마을 동지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튿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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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학생 독립운동가. 1915년 1월 31일 칠곡군 인동면 금전동에서 태어났다. 1932년 칠곡군 왜관면에서 청년동지회를 결성하여 농촌계몽과 민족의식 교육에 주력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형을 받았다. 1932년 4월에 항일 학생활동을 하다가 퇴학당한 이두석(李斗錫)·정행돈(鄭行敦)·이창기(李昌基) 등과 함께 왜관에서 청년동지회(靑年同志會)를 조직하고 독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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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2년 10월 13일에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의거 때 진평마을 주민들을 선도하여 ‘독립만세’ 시위를 하다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의거 당시 진평동 주민 3백여 명이 3월 12일에 만세시위를 하다 주동자 중 8명이 검거되었다. 박봉술은 남은 동지 김도길(金道吉) 등과 14일에 다시 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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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2년 12월 24일에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의거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의거로 전국적인 만세운동이 펼쳐질 때, 진평동에서 이상백(李相佰)·이영식(李永植)·이내성(李乃成) 등이 주동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3월 14일 진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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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4년 5월 9일 칠곡군 약목면 평복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4월 9일, 평복리 마을 청년들과 동산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가 체포되어,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지하수(池夏洙)와 함께 기산(岐山) 지역의 동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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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6년 11월 22일에 칠곡군 기산면 평복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4월 9일에 평복리 마을 청년들과 동산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가 체포되어,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에서 사건이 일어나자, 지하수(池夏洙)와 함께 기산(岐山)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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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5년 6월 29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전국적인 3·1운동 때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거사 전날인 3월 11일에 동지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들어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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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6년 6월 21일에 칠곡군 왜관면 왜관동에서 태어났다. 1928년에 일본 천황을 비판하였다가 6개월간 구금되었다. 신간회(新幹會)에 가입하여, 애국성금을 모금하는 등 항일활동을 계속하다 1939년에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을 받았다. 1927년 2월에 신간회가 결성되자, 칠곡지회에 가입하여 무산자(無産者) 아동의 수업료 면제와 민족교육운동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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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귀국하여 경상북도 칠곡군 지역에서 거주했던 독립운동가. 본관은 밀양. 경주 부윤을 지낸 박수홍(朴守弘)의 11세손으로, 아버지는 박윤하(朴胤夏), 부인은 문화 유씨(文化柳氏)이다. 박상만(朴相萬)[혹은 朴尙萬]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박희광(朴喜光)은 1901년 2월 15일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서 태어났다. 1910년 아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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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1년 2월 17일에 칠곡군 인동면 금전동에서 태어났다. 1932년에 청년동지회를 결성하여 문맹 퇴치와 민족의식 고취 활동을 하던 중, 1938년에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을 받았다. 1932년 왜관(倭館)에서 이창기(李暢基)·이두석(李斗錫) 등의 청년동지회(靑年同志會) 조직에 참여하고 정행돈(鄭行敦)·박형동(朴亨東) 등 70여명의 동지들과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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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4년 10월 8일에 칠곡군 칠곡면 읍내동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 때 한국광복군은 김원봉이 이끄는 제1지대와 이범석이 이끄는 제2지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1944년 당시 학도병이었던 배상갑은 일본군을 탈출하여 광복군 제1지대에 입대 후 본부에서 활약하였다. 1940년 9월 17일에 창설된 한국광복군은 1942년에 조선의용대를 편입하여 제1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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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78년 11월 21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서기옥은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에 확산될 때, 진평동에서 이상백(李相佰), 이영식(李永植), 이내성(李乃成) 등이 주동한 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3월 12일 마을 뒷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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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7년 3월 3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나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에서 이상백(李相佰), 이영식(李永植), 이내성(李乃成) 등이 주동한 시위에 참가하여 3월 12일 진평동 뒷산에 모인 군중 약 300여 명과 함께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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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6년 12월 14일 칠곡군 석적면 반계동에서 태어났다. 1915년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1916년 친일파 처단에 사용할 총을 보관·전달하였다가 체포되어 태형(笞刑)을 받았다. 1913년 풍기(豊基)에서 채기중(蔡基中) 등을 중심으로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을 조직할 때, 왜관(倭館)의 이수택(李壽澤)과 같이 가입하여 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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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5년 1월 12일 칠곡군 약목면 덕산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군자금을 모아 상해로 가려다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치른 후, 1925년 다시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집 지령서를 부호(富豪)들에게 배포하고 모금하던 중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형을 받았다. 1920년 북만주(北滿洲)로 가서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협의하고 돌아와, 군자금 조달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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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9년 칠곡군 약목면에서 태어났다. 1909년 대동청년당(大同靑年黨) 창립에 참여하여 지하활동한 것을 시작으로 1915년에는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 중앙총부에서 활동하였다. 1927년 신간회(新幹會)에 가입하여 김천지회(金泉支會)를 조직하였으며 잦은 구금과 고문의 여독으로 광복 후 1951년 11월 29일 사망하였다. 보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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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무정부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1885년 4월 26일에 칠곡군 북삼면 율동에서 태어났다. 1925년에 학생운동가 출신들로 구성된 무정부주의 진우연맹(眞友聯盟)을 조직하고 1926년에는 연맹에 파괴단(破壞團)을 만들어 주요 관서와 일본인 점포 폭파 등을 추진하다 체포되어 징역 5년형을 받았다. 1925년 당시 대구노동위원회 농민부 위원과 대구노동친목회 상무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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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 때, 기독교 학생과 신도들을 중심으로 행진을 선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았다. 1919년 3·1운동 때, 대구는 2월말부터 이갑성(李甲成)이 기독교 목사 이만집(李萬集)에게 적극 권유하면서 분위기가 조성되어 갔다. 거사는 서문시장에서 장날인 3월 8일 오후 1시로 정하고, 남산(南山)교회, 제일(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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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7년 8월 8일에 칠곡군 북삼면 숭오동[현 북삼읍 숭오리]에서 태어나, 1919년 3·1운동 때 북삼·약목면 주민들의 약목장터 만세시위를 추진하던 중에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11일에 칠곡군 북삼면 숭오동의 기독교도 김익주(金益周)의 집에서 약목면에 사는 형 김익시(金益時)를 만나 양 지역 기독교도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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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및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항일 운동가. 1842년(헌종 8) 11월 29일에 칠곡군 북삼면 숭오동[上江, 江津]에서 유익원(劉翼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5년의 을사조약 강제 체결에 대해 반대 상소를 올리고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때는 ‘5적 성토문’을 붙였다. 일본에 내는 납세를 거부하였고, 일정(日政)의 시책은 일절 불응하여 3차에 걸친 투옥 끝에 옥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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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0년 1월 10일 칠곡군 왜관면 왜관동에서 태어났다. 1936년 왜관에서 동지구락부(同志俱樂部) 부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회주의 계몽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주력하다가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6년 6월 비밀결사 동지구락부 부원으로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펼쳤다. 동지구락부는 국내에 민족의식과 사회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 조직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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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3년 4월 1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의거 때 진평 지역 주민들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형의 옥고를 치르고, 더 강력한 항일 투쟁을 위해 노력하던 중, 1927년에 자결·순국하였다. 1919년 전국에서 3.1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날 때,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인 이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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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호는 송제(松齊)이다. 칠곡에서 독서회, 노동자 야학회 등을 조직하여 청년 운동과 사회 운동을 하였다. 1911년 10월 15일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에서 태어났다. 1929년 11월 3일 대구 고등 보통학교[현 경북 고등학교] 재학 중 광주 학생 운동에 동참하여 일제에 항거하였다. 1932년 2월 왜관면에서 정칠성(鄭七星)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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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2년 5월 19일 칠곡군 왜관면 매원동에서 이수목(李壽穆)의 장남으로 태어난 부자(父子) 독립운동가이다. 서울에서 중학교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 서울 시위에 참가하여 퇴학당한 후 1932년 고향에서 청년동지회를 결성하여 민족의식 교육에 주력하다가 1938년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고 순국하였다. 왜관보통학교(倭館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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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일본 유학생 출신 독립운동가. 1926년 8월 20일에 칠곡군 약목면 무림동[현 무림리]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오사카[大阪]전문학교를 중퇴하고, 독립운동을 위해 시마무라토공회사에 들어갔다. 항공병에 지원하여 일본군 기지를 폭격하려고 동지들과 계획하던 중에, 1944년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해방 후 출옥하였다. 일찍이 일본에 건너가 오사카전문학교[大阪專門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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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6년 8월 15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일대의 만세 시위를 주동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의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운동 때 대구 거사가 준비 중인 3월 7일에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인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 20매를 등사해 가지고 인동교회 목사인 이상백(李相佰)을 찾아와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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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0년 12월 9일에 칠곡군 왜관면 매원동에서 태어났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전국화를 추진하다 체포되었다. 1932년에는 농민조합건설준비협의회를 조직하여 항일 의식을 고취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총 2회에 걸쳐 6년을 복역하였다. 1927년 11월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京城第一公立高等普通學校)에 재학중 결사대에 가입하여 반일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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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수각(李壽珏)은 1887년(고종 24) 11월 20일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8월 서울에서 이민행(李敏行), 한규원(韓圭源) 등과 독립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비밀 결사 현신사(玄申社)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징역 6월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963년 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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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0년 8월 2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면 매원동[현 매원리]에서 태어났다. 1915년에 조선 국권 회복을 위한 자금 모집과 선전 활동을 하였으며, 1944년에는 여운형(呂運亨) 등의 조선건국동맹에서 재무 담당으로 활동하였다. 1915년 2월 28일 정월 대보름 시회(詩會)로 위장하여 달성군 수성면 안일암(安逸庵)에서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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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5년 1월 29일 칠곡군 왜관면 석전동에서 태어났다. 1925년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의 내몽고 지역 독립군 기지 건설을 위한 군자금 모집에 참여하여 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중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파리장서(巴里長書)를 가지고 중국에 가서 활동하던 김창숙은 독립운동의 활로를 열 방안으로, 내몽고(內蒙古) 지역황무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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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1년 2월 17일 칠곡군 왜관면 석전동에서 태어나, 약목(若木)에 있는 동락의숙(同樂義塾)과 서울 보혜학교(普惠學校)를 수학하였다. 1919년에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하여, 1920년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게 하였다. 1924년에 체포되어 복역 중에 병보석 되었으나 고문의 여독으로 1927년에 순국하였다. 1913년 경상남도 밀양(密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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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61년 10월 4일 칠곡군 칠곡면 구암동에서 태어났다. 1913년부터 만주의 독립군 양성을 위해 동지들과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1915년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9년 이회영(李會榮), 이동녕(李東寧), 김구(金九), 안창호(安昌浩) 등이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고 해외에 독립 기지를 만들기로 하여 1910년 7월 남만주(南滿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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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1년 7월 29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의거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전국적인 3·1의거 때,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거사 전날인 3월 11일에 동지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들어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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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79년 2월 16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전국적인 3·1운동 때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거사 전날 동지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들어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튿날 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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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주(廣州). 호는 만산(晩山), 자는 맹기(孟綺)이다. 이이익(李以翊)은 1868년(고종 5) 4월 26일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심천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곽종석(郭鍾錫) 등 유림 137명과 함께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파리 강화 회의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독립 청원서[파리 장서]에 영남 유림 대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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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3년 12월 24일 칠곡군 왜관면 왜관동 달오[月塢]마을에서 태어났다. 1931년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에 동맹휴학을 주동하여 퇴교당하고, 1932년에 청년동지회를 결성하여 농촌계몽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1938년에 체포되어 미결수로 고초를 겪고 1941년에 석방되었다. 왜관보통학교(倭館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28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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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주(廣州). 호는 소암(素巖), 자는 유중(侑仲)이다. 1932년부터 1937년까지 농촌 조합을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투옥되었다. 이항진(李恒鎭)은 1916년 3월 16일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에서 태어났다. 1930년 왜관 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1931년 대구 고등 보통학교[현 경북 고등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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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1898년 3월 12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의거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태(笞) 90도(度)형을 선고받았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될 때, 진평동에서 이상백(李相佰), 이영식(李永植), 이내성(李乃成) 등이 주동한 시위에 허도봉(許道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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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8일에 서문시장 만세시위 때 시위대의 행진을 선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을 받았다. 1919년 3·1운동 때, 대구에서 이만집(李萬集) 목사가 주도하였다. 거사는 서문시장에서 토요일 장날인 3월 8일 오후 1시로 정하여 남산(南山)교회, 제일(第一)교회, 서문(西門)교회와 성경학당(聖經學堂), 계성(啓聖), 대구고보(大邱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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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5년 5월 7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될 때, 진평동에서 이상백(李相佰), 이영식(李永植), 이내성(李乃成) 등이 주동한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3월 14일 진평동 뒷산에서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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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9년 11월 16일에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의거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에서 이상백(李相佰), 이영식(李永植), 이내성(李乃成) 등이 주동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3월 14일에 진평동 뒷산에서 시위 군중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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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6년 9월 17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주민들을 선도해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전국적인 3·1운동 때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거사 전날 동지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튿날 뒷산에 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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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3년 10월 20일에 칠곡군 약목면 각산동[현 기산면 각산리]에서 태어났다. 약관에 광복군에 입대하여 징모(徵募) 제3분처에서 지하공작 활동을 했으며 광복을 맞아 귀국한 후에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치안국장과 국회의원을 지냈다. 1944년을 전후로 중국 각지의 일본군 점령지를 탈출해 온 광복군 동지 박승학(朴承鶴), 김해일(金海一) 등 수십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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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8년 10월 5일 칠곡군 석적면 중동[현 석적읍 중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번진 4월 9일에 중동마을 청년들과 뒷산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하였다가 체포되어 태형(笞刑) 90도(度)를 받았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칠곡군에도 인동면 등지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석적면 중동에서 일가인 장영석(張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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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4년 8월 22일 칠곡군 인동면 인의동[현 구미시 인의동]에서 태어났다. 1936년 동지구락부(同志俱樂部) 부원으로 항일 활동을 하면서 사회주의 민족의식 고취에 주력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형을 받았다. 1936년 6월 동지구락부에 가입하여 칠곡군에서 항일 활동을 펼쳤다. 동지구락부는 국내에 민족의식과 사회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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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상건(張尙建)은 1898년(고종 35) 6월 17일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진평리[현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2일 이상백(李相栢)·이내성(李乃成) 등 200여 명과 함께 인동면 진평리 마을 뒷산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6월 14일 대구 복심 법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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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5년 12월 20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평복동[현 기산면 평복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4월 9일에 평복마을 청년들과 동산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가 체포되어 태(笞) 90도(度)형을 받았다. 1919년 3·1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장상흠은 기산(岐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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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유림(儒林) 대표 독립운동가. 1851년(철종 2) 10월 24일에 칠곡군 약목면 각산동[현 약목면 각산리]에서 전 형조참판(刑曹參判) 장시표(張時杓)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 후기 성리학의 거두 이진상(李震相)에게 사사하였다. 1907년에는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 지방보상 회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919년 3·1운동 때,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전국 유림들의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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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78년 7월 8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중동[현 석적읍 중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4월 9일, 중동마을 청년들과 뒷산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5월형을 받았다. 1919년 3·1의거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석적면 중동의 선비였던 장영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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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1년 10월 5일에 칠곡군 석적면 중동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번진 4월 9일에 중동마을 청년들과 뒷산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5월형을 치렀다. 1919년 3·1의거가 전국으로 확산어 칠곡군에도 만세운동이 일어나면서 석적면 중동의 장영석은 장지희(張祉熙)·장영창(張永昌)·장영옥(張永鈺)·장영남(張永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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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0년 8월 19일에 칠곡군 석적면 중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4월 9일, 중동마을 청년들과 뒷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5월형을 받았다. 1919년 3·1의거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장영옥은 장지희(張祉熙)·장영창(張永昌)·장영남(張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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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70년(고종 7) 8월 24일에 칠곡군 석적면 성곡동[현 성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가운데, 4월 9일의 성곡동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 2월 형을 받았다. 1919년 3·1의거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석적면 성곡동·중동에서는 문중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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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영직(張永稷)은 1889년(고종 26) 12월 10일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진평리[현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4일 인동면 진평리 뒷산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1919년 8월 9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았다. 1929년 9월 8일 사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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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0년 10월 10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중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번진 4월 9일에 중동마을 청년들과 뒷산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을 받았다. 1919년 3·1의거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석적면 중동의 선비 장영창(張永昌)은 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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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4년 5월 17일에 칠곡군 석적면 중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번진 4월 9일에 중동마을 청년들과 뒷산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5월형을 받았다. 1919년 3·1의거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석적면 중동의 청년선비 장영희(張永希)는 장지희(張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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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미국 교포 독립운동가. 1883년 6월 15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남계동[현 남계리]에서 태어나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미국으로 이주했다가 고향에 일시 귀국하였다. 1917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 가 와이오밍주(州)에 정착한 후, '대한인 국민회(大韓人 國民會)'에 참여하여 한인(韓人) 결집을 선도하고, 상해 임시정부의 애국공채(愛國公債)를 발매·송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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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4년 5월 1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임수동에서 태어났으며 1927년 조선은행대구지점에 폭탄을 터뜨린 장진홍과 함께, 안동 지역의 주요 기관을 폭파할 준비를 하던 중, 일경(日警)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자결·순국하였다. 일족(一族)인 장진홍이 1927년 10월 18일에 조선은행 대구지점을 폭파하고 매약행상을 가장하여 피신다닐 때 장용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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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3년 6월 3일에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일원의 주민들과 만세시위를 선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의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의거 때,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 20매를 마을의 목사 이상백(李相佰)에게 가져와 시위 거사일을 3월 12일로 정하고 태극기와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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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3년 7월 28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일원의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의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3월 7일에,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목사 이상백(李相佰)을 찾아와 만세 시위 거사를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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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8년 1월 15일에 칠곡군 가산면 학산동에서 태어났다. 을사조약(乙巳條約) 이듬해, 영천(永川)에서 일으킨 산남의진(山南義陣)에서 참모장으로 활약하였으며, 그 후 1919년 3·1운동 때는 시위대를 선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5년 11월에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2월에 고종(高宗)은 신임하던 전 도체사(都體使) 정환직(鄭煥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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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5년 11월 26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중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4월 9일에 중동마을 청년들과 함께 뒷산에서 만세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을 받았다. 1919년 3·1의거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장지희(張祉熙)는 장영창(張永昌)·장영옥(張永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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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5년(고종 32) 6월 6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옥계동 문림(文林)마을에서 장성욱(張聖旭)의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8년에 만주·러시아 등지에서 한인들을 군사 훈련을 시켰으며 1927년 조선은행대구지점에 폭탄을 터뜨리고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자, 1930년 7월 31일에 옥중에서 자결·순국하였다. 인명학교(仁明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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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일본유학생 독립운동가. 1923년 3월 4일에 칠곡군 왜관면 왜관동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시마무라토공회사[島村土工會社]에 들어가 동지들을 규합하고 항공병과 경찰이 되어 역공격하려고 계획하던 중에 배반자의 밀고로 투옥되었다가 해방 후 출옥하였다. 일본 교토[京都]에서 궁진중학(宮津中學)을 졸업하고 시마무라토공회사에 들어가 칠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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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0년 7월 26일 칠곡군 지천면 신동에서 태어났다. 1925년 학생운동가 출신들로 무정부주의 진우연맹(眞友聯盟)을 조직하고 1926년 연맹 내에 파괴단(破壞團)을 만들어 주요 관서와 일인(日人) 점포 폭파 등을 추진하던 중에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받았다. 1925년 9월 29일 대구의 서동성(徐東星), 경남의 방한상(方漢相), 칠곡의 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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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농촌계몽 독립운동가. 1908년 4월 20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면 왜관동[현 왜관리]에서 태어났다. 1932년 농민조합건설준비협의회(農民組合建設準備協議會)를 조직한 후 농민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받았다. 출옥 후에도 항일 활동을 계속하다가 다시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1932년 2월에 칠곡군 왜관(倭館)에서 최소복(崔小福)·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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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청년 독립운동가. 아우 정행돈(鄭行敦)과 함께 활동한 형제 독립운동가로서 1919년 항일결사 왜관청년회(倭館靑年會)를 조직하고 동창학원(同昌學院)을 설립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20년 민족사상 강연을 하다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이듬해 병보석되었으나 순국하였다. 1914년 서울에서 숭실전문학교(崇實專門學校) 학생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려다가 경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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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청년 독립운동가. 형 정행국(鄭行國)과 함께 항일운동을 했던 형제 독립운동가이다. 정행돈은 1931년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동맹휴학을 주동하여 퇴학당하고, 1932년 왜관청년동지회를 결성하여 항일 민족의식 고취에 주력하던 중, 1938년에 체포되어 미결수로 고초를 겪다가 1941년에 석방되었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大邱公立高等普通學校)[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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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9년 2월 10일에 칠곡군 약목면[현 기산면] 평복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확산되던 4월 9일에 평복마을 청년들을 선도하여 동산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받았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나자, 지하수(池夏洙)는 인근 마을 청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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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6년 3월 13일 약목면 덕산동[현 덕산리]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으며 1920년 이후, 공산당 노동운동을 통한 독립을 추구하다 옥고를 치렀다. 대구 협성중학(協成中學)을 거쳐, 1911년 일본 도쿄로 건너간 후 거기서 중앙대학(中央大學)을 다니다가 1914년 귀국하여 농사를 지었다. 1922년 1월 무산자 동지회(無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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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60년(철종 11) 7월 3일에 칠곡군 왜관면 왜관동에서 태어났다. 궁중 호위국에 근무하던 1905년(고종 42)에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매국 역적들을 처단하려는 거사 자금을 지원하였다가 체포되어 10년 유배형(流配刑)을 받았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당시 궁중 호위국원(扈衛局員)이던 최익진은 매국 역적들을 처단하려는 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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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3년 칠곡군 왜관면 왜관동에서 태어났다. 중국 상해(上海) 임시정부 경위대원을 거쳐, 중경(重慶)에서 광복군(光復軍) 제1지대(支隊) 본부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 9월 17일 중경에서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이 정식 창설되었으나 초기에는 중국 정부의 원조를 받으면서 작전상의 통제도 받았다. 1942년 계림(桂林)에 있던 조선의용대(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