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370 |
---|---|
한자 | 仇知山 部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고대 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호동 |
[정의]
신라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에 있던 특수한 지방 통치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부곡(部曲)에 대해서 가장 명확하고 구체적인 설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주목 고적 조에 있는 등신장(登神莊)에 관한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 “이제 살펴보건대 신라가 주군현(州郡縣)을 설치할 때 그 전정(田丁)이나 호구(戶口)가 현이 될 수 없는 것은 향 또는 부곡으로 두어 소재하는 읍에 속하게 하였다. …… 위의 각각에는 토성 이민(土姓吏民)이 있다”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부곡이 삼국 시대부터 이미 존재하였다는 사실과 아울러 인구나 토지가 군이나 현의 규모에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구지산 부곡(仇知山部曲)은 신라 시대에 존재하여 고려 시대 밀성군(密城郡)에 소속되었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권57 지리지 경상도 현풍현 조(玄驍縣條)에 “1390년(공양왕 2)에 감무(監務)를 두고, 밀성의 구지산 부곡을 떼어 내어 소속시켰다”라는 기록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현풍현 조의 기록도 동일하다.
[변천]
구지산 부곡은 1018년(현종 9)에 밀성군에 소속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에 감무가 설치된 현풍현에 편입되었다. 조선 시대 구지로 개칭되었다.
[의의와 평가]
구지산 부곡은 지방 사회의 하부 구조로서, 군현제에 예속되어 국가의 특정 역을 부담하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지역이었고, 부곡민은 잡척층(雜尺層)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