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374 |
---|---|
한자 | 朝鮮時代 |
영어공식명칭 | Joseon Period |
이칭/별칭 | 이조 시대,이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유기선 |
[정의]
조선시대 달성 지역의 역사.
[연혁]
건국 초 고려의 행정 체계를 답습하던 조선은 태종 연간에 전면적인 지방 제도 개편이 이루어짐에 따라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전국을 팔도로 구분하고 각 도에 감사(監司)[종2품]를 두어 도정(道政)을 총괄하게 하였다. 그리고 각 도의 감사 아래 해당 읍을 통치하는 수령이 파견되었다. 조선은 전국 약 330개의 모든 고을에 왕권(王權)의 대행자인 지방관을 파견함으로써 중앙이 지방을 직접 다스리는 중앙 집권 국가 체제를 완성하였다.
조선 건국 후 대구현(大丘縣)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짐에 따라 1414년(태종 14)에 수성(壽城)과 해안(解顔)이 영속하게 되었으며, 현감이 파견된 현풍현(玄豊縣)과 경산부에 예속된 화원현(花園縣)을 제외한 달성 지역 일대가 행정적으로 대구에 속하게 되었다. 1419년(세종 1)에 호수가 1,000호를 넘기자 대구현은 대구군으로 승격되었으며, 수성·해안·하빈(河濱)이 대구군의 직할 속현(直轄屬縣)이 되었다. 그리고 1466년(세조 12)에 다시 도호부로 승격되는 등 정치적·군사적 비중이 더욱 높아져 갔다. 마침내 1596년(선조 29)에는 대구 도호부에 경상도 감영이 설치되었으며 감영의 경비 조달을 위해 화원현까지 이속되었다. 이에 달성 지역은 감영 소재지로서 경상도의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한편, 현풍현은 1457년(세조 3)에 진관 체제(鎭管體制)의 확정 이후 대구도(大丘道)의 좌익에 편입되어 하나의 행정 구역으로 편제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전국적인 지방 제도의 개편에 따라 달성은 대구부 대구군과 현풍군으로 분리되었으며, 이듬해에 13도제의 실시에 따라 경상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1905년(고종 42)에는 성주군의 노곡면(盧谷面)이 현풍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대구의 시가지가 대구부로 승격되면서 대구군의 나머지 지역과 현풍군이 통폐합되어 달성군이 되었다.
[조선시대 달성 지역의 재지 사족]
조선의 지방 통치는 '왕(王)-감사(監司)-수령(守令)'으로 이어지는 관치 행정 계통, '경재소(京在所)-유향소(留鄕所)-면리임(面里任)'으로 이어지는 사족 중심의 자치 행정 계통, 그리고 행정 실무를 담당한 향리층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들 삼자가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가운데 지방 행정이 운영되었다.
16세기 이후 성리학으로 무장한 사림(士林) 세력은 사족 주도의 새로운 향촌 지배 체제를 모색하였다. 그들은 성리학적 실천 윤리를 보급하기 위해 『소학(小學)』을 강조함과 동시에 향촌 자치 규약인 향약(鄕約)을 실시하였다. 향약은 덕업상권(德業相勸)·과실상규(過失相規)·예속상교(禮俗相交)·환난상휼(患難相恤)의 덕목을 강조함과 동시에 사족의 하층민에 대한 통제 규정을 둠으로써 사족 주도의 향촌 자치를 시도한 것이다. 현재 달성 지역 역시 지방 사족 주도의 향약이 실시되었는데 현풍의 현풍현(玄風縣) 향약(鄕約), 가창의 우록동약(友鹿洞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향약의 구성원을 향원(鄕員)이라 하였으며 향원은 자신들만의 명부인 향안(鄕案)을 작성하였다. 향안의 입록(入錄)은 곧 지방의 실질적 지배층임을 인정받는 것이었기에 신분상 하자가 없어야 하며, 유학적 식견을 갖추어야 하는 등 입록 절차가 대단히 까다로웠다. 달성 지역의 경우 1621년(광해군 13)부터 1851년(철종 2)까지 작성된 『현풍 향안(玄風鄕案)』이 현전하고 있으며, 현풍 곽씨(玄風郭氏)·서흥 김씨(瑞興金氏) 등 당시 현풍 지역의 재지 사족들을 망라하고 있다.
[조선시대 달성 지역의 유학]
조선시대 달성은 영남 유학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은 도산 서원(陶山書院)·병산 서원(屛山書院)·소수 서원(紹修書院)·옥산 서원(玉山書院)과 함께 우리나라의 5대 서원으로 꼽히는 도동 서원(道東書院)이 건립된 곳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위치한 도동 서원은 동방 5현의 수현(首縣)으로 문묘에 배향된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을 향사하는 서원으로,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 훼철령 당시 전국 650여 개 서원 가운데 살아남은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김굉필의 외증손이며 당시 영남학파를 영도해 나갔던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정구의 제자인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및 대구 현풍 지역 사림의 노력으로 건립된 도동 서원은 이후 대구·성주를 중심으로 경상도 중부권을 대표하는 서원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도동 서원 외에도 달성 지역에는 예연 서원(禮淵書院)·이양 서원(尼陽書院)·녹동 서원(鹿洞書院)·낙빈 서원(洛濱書院)·금암 서원(琴巖書院)·용호 서원(龍湖書院)·인흥 서원(仁興書院) 등의 서원이 건립되었으며, 이들 서원은 달성의 유교 문화 발전에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