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4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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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瑜伽寺石造如來坐像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유가사길 161[양리 144]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박병선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양리 유가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석조 불상.
[개설]
유가사석조여래좌상(瑜伽寺石造如來坐像)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양리 비슬산 유가사 용화전에 봉안되어 있는 석조 여래 좌상으로 2003년 4월 30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유가사석조여래좌상의 상호(相好)[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와 양 무릎은 시멘트로 보수되어 불상의 상호에서 원래의 모습을 찾기가 어렵고, 대좌의 중대석도 훼손이 심한 상태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본격적인 고려 시대 불상의 특징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어 10세기 고려 초의 불상으로 판단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형태]
유가사석조여래좌상은 불상과 대좌가 모두 같은 석질의 화강암으로 조성된 것으로 삼단의 방형 대좌 위에 항마촉지인(降摩觸地印)의 수인(手印)을 결한 불상이다.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는 낮고 작으나 나발(螺髮)[머리카락이 짧고 꼬부라진 모양]은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양 귓불이 짧은 점이 시선을 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처럼 위축되게 표현되었으며, 신체의 양감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허리가 잘록하게 표현되어 신체의 양감을 다소 느낄 수 있다.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이며, 왼손은 오른발 위에 어색하게 꺾인 채로 놓여 있다. 불의(佛衣)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가슴의 대부분과 어깨 일부가 드러나 있고 등도 많이 노출되어 있으며,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다리에는 주름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런 특징은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태성리에 있는 괴산 각연사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槐山覺淵寺石造毘盧遮那佛坐像)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대좌는 10세기 이후의 불상에서 나타나는 삼단의 방형 대좌이며, 각각 별석(別石)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대는 16엽(葉) 단판 연꽃무늬이며, 그 안에 나뭇잎과 꽃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2단의 각형 괴임대가 중대석을 받치고 있다. 중대석은 각 면에 우주(隅柱)를 조각하였는데, 각각 그 안에 한 구의 공양자상(供養者像)과 세 구의 천인상(天人像)이 고부조(高浮彫)로 조각되어 있다. 공양자상은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자세이며, 천인상은 휘날리는 옷자락이 날렵하다. 그리고 상대에는 앙련(仰蓮)이 새겨져 있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팔각 연화 대좌의 예가 많이 남아 있고 상대적으로 방형 대좌의 예는 많지 않은데, 통일 신라 9세기의 합천 청량사 석조 여래 좌상(陜川淸凉寺石造如來坐像)이 대표적이며, 고려 시대에는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 보살 좌상(金泉靑巖寺修道庵石造菩薩坐像), 예천 청룡사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醴泉靑龍寺石造毘盧遮那佛坐像) 등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유가사석조여래좌상은 형태면에서 석굴암 본존상과 같은 계열의 불상으로 볼 수 있으나, 위축된 어깨와 밋밋한 신체 표현, 부자연스러운 수인, 갸름한 얼굴형에 짧은 귀, 신체를 많이 노출한 편단우견의 불의 등에서 괴산 각연사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이나 산청 사월리 석조 여래 좌상(山淸沙月里石造如來坐像) 등 신라 말 고려 초 10세기의 불상과 유사하여 이 시기 불상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