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5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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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淵寺極樂殿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용연사길 260[반송리 88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병선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반송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용연사의 불전.
[개설]
극락전은 서방 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불전으로, 무량수전 혹은 아미타전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웅전(大雄殿)·대적광전(大寂光殿)과 함께 3대 불전으로 손꼽을 만큼 많이 건립되었다.
[위치]
용연사 극락전(龍淵寺極樂殿)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용연사길 260[반송리 882]에 있다.
[변천]
용연사는 914년(신라 신덕왕 3) 보양 국사(寶壤國師)가 창건한 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는 등 수난을 당하다가 1728년(영조 4) 극락전을 비롯한 여러 건물이 중건되었다. 근년에 발견된 상량문에는 약 270년 전에 보궁을 건립한 것으로 나타나 1700년대 초엽 사찰의 중건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형태]
용연사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 겹처마 다포식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전면 기단은 둔중한 화강석 다듬돌을 세벌대로 높게 쌓고, 그 위에 원좌를 둔 자연석 주초를 놓아 흘림과 안쏠림을 둔 두리 기둥을 세워 지었다. 전면은 창호로 개방하였고, 측면은 전면 협간에만 좁은 외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게 하였으며, 공포(栱包)는 외삼출목·내사출목이다. 배면 기둥과 대량에 시주의 이름을 음각하고 내부 단청을 화려하게 한 점이 특이하다. 불전 내부는 우물마루 바닥을 깔고 내진 고주를 세워 고주 사이를 후불벽으로 처리하여 불단을 꾸몄으며, 불단 상부에는 보개를 얹고 전면에 운각과 용을 장식하여 아름다움을 더하였다. 후불탱화는 영산탱(靈山幀)으로 영조의 맏아들로 태어나 7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가 10세에 사망한 효장 세자의 빈궁 조씨를 비롯한 몇몇의 시주로 이루어진 것이다. 조씨는 나이 13세 되던 1727년에 9세인 효장 세자의 세자빈이 되었다가 이듬해 사별하였고, 세자의 삼년상을 끝내고 그의 천도를 위하여 이 영산탱을 시주하였다.
그러나 1731년에 조성한 영산회상 후불탱화와 1744년에 조성한 삼장탱화가 있었으나 모두 도난당하고 지금은 사진 복사본을 대신 걸어 놓았다. 그리고 불전 내부에는 공포 사이마다 생긴 공간에 부처나 조사의 다양한 모습을 빼곡히 그렸고, 널찍한 벽면에는 벽화를 그렸으며 후불 벽화도 그렸다. 특히 왼쪽 벽 상단에 그려진 백의 관음도와 그 아랫단의 3폭 그림이 눈길을 끄는데 범상치 않은 필치가 엿보인다. 단청은 화려한 빛깔이 모두 날아가고 고색이 가득하다. 천장의 반자마다 금색·자주색으로 모란을 네 송이씩 그렸으며, 그 가운데를 나무아미타불 또는 범어(梵語)로 메웠다. 법당이 북향이라 흐리거나 비 오는 날에는 내부가 어두워 벽화나 단청을 충분히 살펴보기가 어렵다.
[현황]
용연사 극락전은 1995년 5월 12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용연사가 소유,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용연사 극락전은 전체적으로 18세기 다포 양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내부 단청의 뛰어난 기법과 고아한 벽화의 수법 역시 수작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