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6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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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晉州河氏 墓 出土 簡札 |
이칭/별칭 | 진주하씨 묘 출토 언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은영 |
[정의]
17세기 초 달성에 살았던 진주하씨의 무덤에서 발견된 편지들.
[개설]
진주하씨 묘 출토 간찰은 1989년 4월 경상북도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석문산성에 있는 진주하씨(晉州 河氏)[1580~1652(?)]의 묘를 이장하던 중 출토된 한글 필사 자료이다. 주인공인 진주하씨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유명한 곽재우(郭再祐)의 사촌 조카인 곽주(郭澍)[1569~1617]의 둘째 부인이다. 친정은 경상남도 창녕군 이방면 옥야 일대[오야]로 곽주가 살았던 현풍 곽씨 집성촌 솔례 마을에서 가까운 곳이다. 곽주는 진주하씨와의 사이에서 3남 5녀를 두었다.
출토된 유물에는 부녀자가 나들이할 때 머리에 써서 몸을 가리던 장옷을 비롯하여 지금의 두루마기와 비슷한 창의(氅衣), 저고리 등 의복류와 이불, 베개, 돗자리 등 침구류, 머리 빗는 도구를 담아 두던 빗첩 등 81점이 있다. 또한 남편인 곽주와 출가한 딸 등이 쓴 편지와 금전 출납을 기록한 것 등 서간문 172매가 있다. 이후 2008년 곽씨 문중에서 보관 중이던 4장의 편지가 추가되어 모두 176매가 되었다. 달성군에서는 개청 100주년을 기념하여 현풍곽주 부부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뮤지컬 「인연」을 제작하여 공연하기도 했다. 편지글을 포함한 진주하씨 묘 출토 유물은 1993년 7월 20일 중요 민속 문화재 제229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 대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제작 발급 경위]
진주하씨 묘 출토 간찰은 주로 남편인 곽주가 부인인 진주하씨에게 보낸 것이 대부분이다. 단순히 안부를 묻는 것에서 손님맞이, 음식 장만, 제사 준비, 자녀 양육 등 다양한 생활 주제를 가지고 부부간에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편지로 이야기 한 것으로 보인다. 진주하씨는 곽주의 두 번째 부인이었는데, 첫 번째 부인이었던 광주 이씨와의 사이에 큰아들 곽이창이 있었다. 진주하씨와의 재혼 후에 큰아들인 곽이창과 진주하씨 사이에 갈등이 심해지자, 진주하씨가 분가하게 되었다. 이후 곽주가 분가한 부인인 진주하씨에게 편지를 더욱 많이 보내었고, 그 결과로서 묘에서 출토된 편지글의 대부분을 곽주의 글이 차지하고 있다.
[형태]
한글 서간문은 총 176매이며, 치부 기록이 12매이다. 이 자료의 작성 시기는 1602년에서 1646년까지 44년에 걸친 것인데, 편지의 크기는 47.5㎝×40.7㎝에서 32.3㎝×8㎝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구성/내용]
전체 176매의 편지글 가운데 한글로 쓴 편지가 171매이고, 한문으로 쓴 편지가 5매이다. 또한 106매가 곽주가 부인인 진주하씨에게 쓴 것이고, 출가한 딸이 친정어머니인 진주하씨에게 보내온 편지가 42매이다. 그 밖에 아들이 어머니 진주하씨에게 쓴 것과 안사돈간 왕복 편지 등이 있다. 특히, 곽주가 아내 진주하씨에게 보낸 편지의 사연이 가장 다채롭다. 곽주가 절에 들어가 공부하는 모습, 과거 길에 나서서 서울까지 가는 여정을 전하거나, 한훤당 김굉필(金宏弼)을 제향하는 도동 서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한 준비, 서울 친구들과 집에 갈 것이니 손님 맞을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 장성한 아들의 관례를 치르는 이야기, 노복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장사를 잘 지내도록 관과 음식을 마련해 주는 이야기, 가족간의 화목을 위해 애쓰는 모습, 질병에 시달리며 치료를 위해 애쓰는 이야기 등 조선 시대 선비의 일상생활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의의와 평가]
진주하씨 묘 출토 유물은 17세기 초의 복식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편지글은 현전하는 편지들 중 내용이 가장 풍부하고, 흥미로운 사연이 많은 자료이다. 이를 통해 조선 시대 선비의 생활 문화와 부녀자의 주변 생활을 알 수 있으며, 현풍 지역의 문화와 풍습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