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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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秋適 |
영어공식명칭 | Chu Jeok |
이칭/별칭 | 노당(露堂),관중(慣中),문헌공(文憲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위은숙 |
[정의]
고려 후기 추계 추씨달성 입향조.
[가계]
본관은 추계(秋溪). 자는 관중(慣中), 호는 노당(露堂). 할아버지 추엽(秋饁)은 남송(南宋) 사람으로 고려인종(仁宗) 때 가솔을 이끌고 고려에 귀화하여 함흥 연화도(蓮花島)에 정착하여 한국추계 추씨(秋溪秋氏)의 시조가 되었다. 아버지는 추황(秋篁)으로 예문관 대제학을 거쳐 문하시중을 지냈다.
[활동 사항]
추적(秋適)[1246~1317]은 충렬왕(忠烈王) 때 과거에 급제하여 안동 서기(安東書記)가 되었다 직사관(直史館)을 거쳐 좌사간(左司諫)에 올랐다. 1298년(충렬왕 24) 환관 황석량(黃石良)이 권세가를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둘러 자신의 고향인 합덕부곡(合德部曲)[현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을 현으로 승격시키려고 하였다. 이에 추적이 문안에 서명을 거부하자 황석량이 내수(內豎) 석천보(石天補), 김광연(金光衍)과 함께 그를 참소하여 순마소(巡馬所)에 투옥되었다. 풀려난 후 북계 용주(龍州)[평안도 용천군]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1307년(충렬왕 33) 안향(安珦)이 이성(李晟), 최원충(崔元冲)과 함께 추적을 기용하여 금학내시(禁學內侍), 오군(五軍), 삼군(三軍)의 7품 이하로부터 내외 생원(生員)에 이르기까기 교육을 담당하게 하였다. 민부상서 예문관 대제학(民部尙書藝文館大提學)으로 치사하였다. 달성군의 추계 추씨 입향조이다.
[학문과 저술]
시랑 겸 국학 교수(侍郞兼國學敎授)로 있을 때 국학 제생의 심성 수양을 위하여 『명심보감(明心寶鑑)』을 편찬하였다.
[묘소]
묘는 인흥 서원[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730]에서 남쪽으로 약 700m 떨어진 산기슭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인흥 서원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