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7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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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千之 |
영어공식명칭 | Yu Cheonji |
이칭/별칭 | 류천지,자강(子强),어은(漁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수환 |
[정의]
조선 후기 현풍 현감을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자강(子强), 호는 어은(漁隱). 증조할아버지는 관찰사를 지낸 유중영(柳仲郢)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유성룡(柳成龍)이다. 아버지는 지평(持平)을 지낸 유진(柳袗)이며, 어머니는 부호군(副護軍) 권채(權采)의 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부인은 이준(李埈)의 딸 흥양 이씨(興陽李氏)와 진양 하씨(晉陽河氏)이다.
[활동 사항]
유천지(柳千之)[1616~1689]는 1616년(광해군 8) 안동부 내성현(奈城縣) 유곡(酉谷)[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외가에서 출생하였다. 1652년(효종 3) 선릉 참봉(宣陵參奉)이 되었으며, 1664년(현종 5) 사옹서 직장(司饔署直長), 1666년 의금부 도사, 1667년 세자익위사 익위(世子翊衛司 翊衛), 1668년 사섬시 주부(司贍寺主簿), 1669년(현종 10) 용강 현령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1670년 현풍 현감(玄風縣監)이 되었다. 이어 1675년(숙종 1)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거쳐, 1677년 단양 군수가 되었는데,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1689년(숙조 15)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에 올랐다.
유천지는 수령으로 있으면서 많은 선정을 펼쳤다. 특히 현풍 현감으로 부임하던 1670년은 전국적으로 큰 흉년이 들었고, 이듬해인 1671년에는 전염병이 크게 돈 해였다. 현풍현은 작은 고을로 그 피해가 극심하여 이리저리 흩어지는 백성이 많았다. 유천지는 창고를 크게 열어 백성들을 먹였으며, 요역을 가볍게 하는 등 구황책(救荒策)에 전력을 다했다. 이로써 재임 5년 동안 백성들이 크게 안정되었다고 한다. 또한 1674년(현종 15)에는 충현사(忠賢祠)를 확장하고, 조두(俎豆)의 예(禮)를 거행하는 등 교화 사업에도 힘썼다. 충현사는 현풍현 출신의 임진왜란 의병장 곽재우(郭再祐)를 배향한 사당으로 지금의 예연 서원(禮淵書院)[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가태리 538]이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