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7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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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竹/舒) |
영어공식명칭 | Lee Seo |
이칭/별칭 | 이직(以直),동호(東湖),덕요 선생(德耀先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후기 달성 지역에 은거한 문신.
[가계]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이직(以直), 호는 동호(東湖). 증조할아버지는 부사과 이한손(李漢孫)이며, 할아버지는 봉사 이수(李壽)이다. 아버지는 모재(茅齋) 이홍우(李弘宇)이다. 이홍우는 큰형인 용재(容齋) 이홍기(李弘器), 작은 형인 육일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과 함께 학행으로 당세에 유명하였다. 이홍우는 유일로 천거되어 관직이 진천 현감에 이르렀으며, 부인은 동부 참봉 강개(姜漑)의 딸 진주 강씨(晉州姜氏)이다. 부인은 참봉 곽충빈(郭忠贇)의 딸 현풍 곽씨(玄風郭氏)와 박용담(朴龍潭)의 딸 승평 박씨(昇平朴氏)이다.
[활동 사항]
이서(李竹/舒)[1566~1651]는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합격한 뒤 천거를 받아 황산 찰방에 잠시 재직하였다. 이어 스승이 권신(權臣)의 배척을 받아 향리로 돌아가자 벼슬에 뜻을 버리고 성주에서 스승과 함께 학문을 강론하였다. 1620년(광해군 12) 정구가 타계하자 3년간 심상(心喪)을 치르고, 회연 서원(檜淵書院)과 비각을 세웠다. 1626년(인조 4) 사축서 별제에 임명되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당시 임금을 호위한 공로로 6품에 승진하였으며, 뒤이어 활인서 별제와 1628년(인조 6) 의금부 도사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이후 논공면(論工面) 삼리리(三狸里) 승호(承湖)에 집을 짓고 후진 교육에 힘쓰는 한편 스스로 호를 '동호(東湖)'라고 하였다. 1650년(효종 1) 80세로 호군에 제수되었다.
[학문과 저술]
이서의 시문집으로 『동호 선생 문집(東湖先生文集)』이 있다. 한강 정구와 함께 송대 유학자들의 예설(禮說)을 담은 『오선생예설(五先生禮說)』을 편집했으며, 『한강집(寒岡集)』을 간행하였다. 승호(承湖)[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에서 후진 교육에 힘쓸 당시 『한강 언행록(寒岡言行錄)』을 편집하였다.
[묘소]
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에 있다.
[상훈과 추모]
사후에 문인들이 ‘덕요 선생(德耀先生)’이라 칭하였으며 한강 정구 및 아버지 모재 이홍우 등과 더불어 성주의 회연 서원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