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836 |
---|---|
한자 | 郭承華 |
영어공식명칭 | Kwak Seunghwa |
이칭/별칭 | 자실(子實),규헌(暌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광우 |
[정의]
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자실(子實), 호는 규헌(暌軒). 증조할아버지는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를 지낸 곽경(郭瓊)이고, 할아버지는 의영고 사(義盈庫使)를 지낸 곽득종(郭得宗)이다. 아버지는 익산 군수(益山郡守)를 지냈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된 곽안방(郭安邦)이고, 어머니는 이조 정랑(吏曹正郞)을 지낸 송포(宋褒)의 딸 김해 송씨(金海宋氏)이다. 곽승화의 부인은 참의(參議)를 지낸 김제(金磾)의 딸 선산 김씨(善山金氏)이다.
[활동 사항]
곽승화(郭承華)는 1477년(성종 8)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였다. 곽승화는 김굉필(金宏弼)과 함께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스승 김종직이 선산 부사(善山府使)로 있을 때, 수시로 친우(親友)들과 함께 선산 향교(善山鄕校)로 찾아가 의심나는 점을 물었다고 한다. 또한 곽승화는 김굉필과 함께 수재(秀才)로 알려졌는데, 김종직의 문집인 『점필재집(佔畢齋集)』에는 김종직이 김굉필·곽승화 두 수재의 시어(詩語)를 극찬하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인품이 청개(淸介)하여 사우(士友)들로부터 추앙을 받았다고 한다. 곽승화는 조만간 사림(士林)에게 화가 일어날 줄 미리 알고, 시골에 묻혀 살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학문과 저술]
1898년 후손 곽기방(郭起邦)이 엮은 『사현 행록(四賢行錄)』에 곽승화의 행적이 수록되어 있다.
[묘소]
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화산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95년(숙종 21)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건립된 도동 서원(道東書院) 별사(別祠)에 배향되었으나,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 집권기 때 별사는 철폐되었다. 1990년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화산리에 건립된 화산 서원(花山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