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8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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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惠永 |
영어공식명칭 | Hye Yeong |
이칭/별칭 | 홍진(弘眞),진응(眞應),보자(普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위은숙 |
[정의]
고려 후기 달성유가사의 주지를 역임한 유가종(瑜伽宗) 승려.
[개설]
속성은 강씨(康氏), 법호는 보자(普慈). 아버지는 내원승(內園丞) 직한림원(直翰林院)을 지낸 강자원(康子元)이고, 어머니는 조산대부(朝散大夫) 호부시랑(戶部侍郞) 충사관(充史館) 수찬관(修撰官)을 지낸 홍인연(洪仁衍)의 딸이다.
[활동 사항]
혜영(惠永)[1228~1294]은 경상북도 문경 출신이다. 11세에 출가하여 남백월산(南白月山)의 수좌(首座) 충연(冲淵)의 제자가 되었고, 1244년(고종 31) 왕륜사(王輪寺) 선불장(選佛場)에 합격하였다. 흥덕사(興德寺)의 주지를 거쳐 1259년(고종 46) 삼중대사(三重大師), 1263년(원종 4) 수좌(首座)가 되었다. 1267년(원종 8) 속리사(俗離寺)로 이주하였으며, 1269년(원종 10) 승통(僧統)이 되었다. 이 때 중찬(中贊) 유경(柳璥)의 부탁으로 『백의예참해(白衣禮懺解)』 1권을 찬술하였다. 1274년(원종 15)에는 불국사(佛國寺)로 옮겨갔으며, 1276년(충렬왕 2)에 양산통도사(通度寺)로 가서 다시 중흥사(重興寺)로 옮기고, 왕명에 의하여 9년 동안 개경에 머무르다 1285년(충렬왕 11) 유가사(瑜伽寺)로 옮겼다.
1290년(충렬왕 16) 사경승(寫經僧) 100명을 데리고 원나라에 가서 금자(金字) 『법화경(法華經)』을 사경하여 원나라 세조(世祖)에게 올리자 크게 기뻐하면서 그 노고를 치하하고, 경수사(慶壽寺)에 머물게 하였다. 1291년(충렬왕 17) 금자(金字) 『대장경(大藏經)』을 사경하고, 1292년(충렬왕 18) 귀국하였다. 그 해 국존(國尊)에 봉해져 보자(普慈)라는 법호를 받았으며, 오교도승통(五敎都僧統)직을 제수 받고 동화사(桐華寺) 주지에 임명되었다. 1293년(충렬왕 19) 삼전(三殿)을 찾아 배알(拜謁)하니, 승려를 청하여 성도사(成道寺) 주법(主法)으로 추대하였다. 1294년(충렬왕 20) 1월 24일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십지품(十地品)을 읽다가 입적하였다. 1294년 2월 2일 용수산(龍首山) 남쪽 산기슭에서 화장하여 영골(靈骨)을 수습하였다.
[사상과 저술]
저서로 42세 때 유경(柳璥)의 청으로 지은 『백의해(白衣解)』 1권 1책[목판본]이 전한다. 『백의관음예참문(白衣觀音禮懺文)』이라고도 한다.
[상훈과 추모]
1298년(충렬왕 24) 동화사 홍진국존비(桐華寺弘眞國尊碑)를 건립하였다. 충렬왕이 시호를 홍진(弘眞), 탑호(塔號)를 진응(眞應)이라 추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