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8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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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永撲 |
영어공식명칭 | Moon Yeongbak |
이칭/별칭 | 장지,수봉,문장지,문박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장지(章之), 호는 수봉(壽峯). 문박(文樸)이라고도 불린다.
[활동 사항]
문영박(文永撲)[1880~1930]은 1880년 8월 3일 경상북도 달성군 화원면 본리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에서부터 1930년 사망할 때까지 13년 동안 전국 각지를 왕래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임시 정부에 군자금을 지속적으로 송달해 주어 독립운동에 기여하였다. 1929년 2월 27일에는 대구 경찰서의 고등계 형사들이 네 시간 동안 가택 수색을 한 뒤 그의 장남 문원만(文元萬)과 함께 체포하였다. 임시 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고 있는 것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가올 3월 1일에 대비하여 예비 검속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1930년 12월 그가 사망하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는 1931년에 이교재(李敎載)를 국내에 밀파하여 그를 애도하는 「대한국 춘추 주옹 문장지선생(大韓國春秋主翁文章之先生)」이라는 조문과 특발문(特發文)을 보냈다. 그러나 임시 정부의 경상도 책임자로 임명되었던 이교재는 일제 관헌의 삼엄한 감시 때문에 조문과 특발문을 전달하지 못하고 자신의 집 천정에 감추어 두었다. 임시 정부의 조문과 특발문은 광복 후에 문영박의 후손에게 전달되었다.
[저술 및 작품]
3권의 시문집인 『수봉 유고(壽峯遺稿)』가 전한다.
[상훈과 추모]
1936년 남평 문씨 후손들은 문영박을 기리기 위해 수봉 정사(壽峰精舍)를 건립하였다. 1980년 건국 포장, 1990년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