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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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五勳 |
영어공식명칭 | Gwon Ohun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남정원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활동 사항]
권오훈(權五勳)[1911~1951]은 경상북도 달성군[현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1911년 5월 15일에 태어났다. 일본메이지 대학[明治大學] 법대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1931년 결성된 중국국민당 산하 비밀 정보 기관인 남의사(藍衣社)에서 활동하였다. 8·15 광복 후에는 귀국해 자신의 재산을 처분해 대전 인근에서 광복군의 생계를 지원하였고,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창당에 참여하여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충청남도 지부 부위원장을 지냈다. 1948년 5월 10일에 치러진 5·10 총선거에서 고향인 경상북도 달성군에서 초대 국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32표 차로 낙선하였다. 이후 국군의 전신인 호국군(護國軍) 106연대 부연대장으로 취임하여 국군 창설에 참여하였다.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제2대 국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경상북도 달성군국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1951년 1월 26일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주택가에서 미국 군인 2명이 여자들을 성희롱하려 하자 미국 군인들을 저지하려다 미국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왼쪽 옆구리 관통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1951년 2월 2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권오훈의 장례는 대구 가톨릭 교회에서 5일장으로 치러졌으며, 당시 전 국회 의장 신익희, 경상북도 도지사 조재천, 대구시 시장 허억, 경상북도 경찰국 국장 조준영 등이 참석하여 조사를 낭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