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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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一 |
영어공식명칭 | Choi Il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활동 시기/일시 | 1960년 5월 - 최일 사회 대중당 경북도당 선전 부장으로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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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60년 6월 - 최일 제3대 경상북도 도의원 선거에서 당선 |
활동 시기/일시 | 1960년 9월 - 최일 민족 자주 통일 중앙 협의회에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61년 3월 12일 - 최일 통일 민주 청년 동맹 경상북도 연맹 위원장으로 선출 |
출생지 | 대구광역시 서구 원대동 |
학교|수학지 | 연희 대학교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신촌동 134] |
활동지 | 사회 대중당 - 대구광역시 |
성격 | 정치인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사회 대중당 경상북도당 선전 부장|제3대 경상북도 도의원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출신의 대한민국 정치인.
[활동 사항]
최일(崔一)은 1960년 5월 사회 대중당에 입당하여 경북도당 선전 부장으로 활약하였다. 사회 대중당은 4·19 혁명 직후에 구 진보당계, 민주 혁신당계, 민족 자주 연맹, 민주 사회당계 등의 혁신 계열이 결집하여 만든 정당이었다. 1960년 6월 사회 대중당 공천으로 제3대 경상북도 도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하였다. 1961년 3월 12일 통일 민주 청년 동맹 경상북도 연맹 결성에 참여하고,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60년 9월 통일 민주 청년 동맹, 사회 대중당・한국 사회당・혁신 동지 총동맹・천도교・유교회・민주 민족 청년 동맹・4월 혁명 학생 연합회 등 혁신계 정당 및 사회단체 등이 통일 운동 조직으로 결성한 민족 자주 통일 중앙 협의회(民族自主統一中央協議會)[약칭 민자통]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사회 대중당이 5·16 군사 정변 직후인 1961년 5월 22일 포고령 제6조에 의하여 해산되면서 정치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최일은 군사 혁명 재판에 회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