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9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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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順天朴氏 |
영어공식명칭 | SuncheonBak Clan|SuncheonBakss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소희 |
[정의]
박영규를 시조로 하고, 박일산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세거 성씨.
[개설]
박영규(朴英規)를 시조로 하는 순천박씨는 박일산(朴壹珊)이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하빈면 묘리 묘골 마을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골 마을순천박씨 집성촌은 한옥 마을로 조성되어 있으며, 육신사(六臣祠)와 낙빈 서원(洛濱書院), 태고정(太古亭), 도곡재(陶谷齋) 등 순천박씨 집성촌임을 알려 주는 문화유산이 많이 있다.
[연원]
순천박씨의 시조 박영규는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승주(昇州)[순천의 옛 이름] 사람이었다고 한다. 태조 왕건(王建)[877~943]을 도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움으로써 개국 공신에 책록되고 승주군(昇州君)에 봉해졌다. 박영규의 후손인 박난봉(朴蘭鳳)이 평양 부원군(平陽府院君)[평양은 순천의 엣 이름]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그를 득관조(得貫祖)로 하였으며, 이후 세계가 실전(失傳)되어 고려충숙왕 때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지낸 박숙정(朴淑貞)을 1세조로 하고, 이후 19개 파로 분파되어 있다. 묘리 묘골 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순천박씨는 박숙정의 아들 박원룡(朴元龍)·박원호(朴元虎)·박원구(朴元龜)·박원린(朴元麟)·박원상(朴元象) 중 막내 박원상의 증손인 박팽년(朴彭年)[1417∼1456]의 후손이다.
[입향 경위]
조선 시대 단종의 복위 운동을 꾀하다 화를 입은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들이 살아온 영남의 대표적인 양반 마을이다. 단종 복위 운동의 실패로 박팽년을 비롯한 일가의 남자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면서 대가 끊길 위기에 처했을 때 박팽년의 둘째 아들인 박순(朴珣)의 부인이 친정인 묘골에서 아들을 낳았다. 부인은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노비의 딸과 바꾸어 자신의 아들을 노비의 아들로 키우고 이름을 박씨 성을 가진 노비라 하여 박비(朴婢)라고 지었다. 박비가 성장하여 조선성종 때, 박팽년의 자손임을 고하자 성종이 기뻐하며 이름을 일산(壹珊)으로 고쳐 주었다. 이후 박일산이 자신의 외가인 묘골에 자리 잡으면서 순천박씨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현황]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대구광역시 달성군에는 705명의 순천박씨가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묘골은 한 때 70여 호나 되는 큰 집성촌이었으나 지금은 후손들이 도시와 인근 촌락으로 이주하면서 그 수가 많이 축소되었다. 그러나 마을을 들어서면 여전히 영남의 대표 양반 마을임을 보여 주는 문화 유적들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관련 유적]
묘리에 있는 순천박씨의 유적으로는 육신사, 낙빈 서원, 도곡재, 삼가헌, 하엽정 등이 있다. 육신사는 본래 낙빈사라 하여 사육신을 배향하는 사당이었다. 후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낙빈 서원과 함께 훼철되었으나 1924년 낙빈 서원이 재건되면서 다시 사육신을 봉안하였고, 1974년 지금의 육신사를 건립하였다. 낙빈 서원은 본래 박팽년의 사당인 하빈사에서 제사를 지내다 1691년(숙종 17) 사육신을 위한 사당과 강당을 건립하고 3년 뒤 사액 서원이 되었다. 이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24년 재건되었다.
태고정은 1479년(성종 10) 박팽년의 손자인 박일산이 세운 정자로 임진왜란 당시 화재로 일부만 남았던 것을 1614년(광해군 6)에 다시 중건하였다. 1971년 12월 6일 보물 제554호로 지정되었다. 도곡재는 1778년(정조 2) 대사성을 지낸 박문현의 살림집으로 건립하였다가 1800년대에 도곡(陶谷) 박종우(朴宗佑)의 재실로 사용되면서 그의 호를 따서 도곡재라 불렀다. 1974년 12월 10일 대구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있다.
삼가헌(三可獻)은 1747년(영조 23) 박팽년의 13대 손인 박광석(朴光錫)[1764~1845]이 묘골에서 파회 마을로 분가해오면서 건립한 집으로, 1979년 12월 31일 중요 민속 자료 제104호로 지정되었다. 별당인 하엽정(荷葉亭)은 박광석의 손자 하정(荷亭) 박규현(朴奎鉉)이 집을 지으며 흙을 파낸 자리를 못으로 꾸미고 파산 서당 건물을 앞으로 옮겨 지은 정자이다. 누마루를 한 칸 달아내고 못에는 연을 심고 가꾸었는데, 하엽정이란 이름도 여기서 연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