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14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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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1872年 地方 地圖 玄風 地圖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은영 |
[정의]
1872년 편찬된 군현 지도 가운데 현풍현을 그린 지도.
[개설]
『1872년 지방 지도』는 흥선 대원군이 중앙 집권적 정치 체제 확립과 서양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하여 각종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지방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해서 전국 군현의 읍지 편찬과 지도 제작 사업을 추진한 결과물이다. 총 459매의 『1872년 지방 지도』는 조선 시대 관찬 지도 제작 사업의 마지막 성과로 평가되는데, 이 때 제작된 지도들은 군현 지도뿐만 아니라 영(營)·진보(鎭堡)·목장(牧場)·산성(山城) 등을 그린 지도까지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1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제작되어 수합되었기 때문에 통일적이고, 체계적으로 그려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전의 지도들보다 큰 규격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지도에 들어있는 각종 정보는 풍부한 편이다.
[저자]
『1872년 지방 지도』「현풍 지도」 는 경상도 현풍현에서 제작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흥선 대원군은 각종 개혁 정책을 시행하면서, 지방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하여 전국 군현의 읍지와 지도 제작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에 1871년(고종 8) 전국 군현의 읍지 편찬을 명하고, 이듬해인 1872년(고종 9)에는 모든 군현과 군사 시설 등을 지도로 제작하여 올리라고 명령하였으며, 그 결과 『1872년 지방 지도』가 제작되었다.
[형태/서지]
전국의 모든 고을과 군사 요충지 별로 한 장씩 그린 채식 지도 이다. 크기는 가로 70~90㎝, 세로 1.0~1.2m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현풍현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구지면, 유가읍, 논공읍 일대로 읍치는 현풍읍 부리에 있었다. 동쪽은 비슬산을 비롯한 험준한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서쪽은 낙동강을 낀 저지 평야가 펼쳐진 비교적 조그만 고을이다. 동쪽 방향을 지도의 상단으로 배치한 점이 독특하다. 대로(大路)는 붉은색 선으로 표기하여 당시 교통로를 확인할 수 있다. 사방의 현 경계는 대구, 성주, 청도, 고령, 창녕과의 거리를 적고 있다. 읍치인 붉은색 원으로 표기한 현내면(縣內面)에는 객사, 향교 등과 더불어 대동창(大同倉), 진창(賑倉), 읍창(邑倉), 사창(社倉) 등의 창고가 상세히 그려져 있어서 지도 제작의 목적이 지방 재정의 파악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읍치를 제외한 15개 면은 노란색 원으로 표기하고 각 면마다 사창을 상세히 그려 놓았다.
걸산면 북쪽에는 봉대(烽臺)가 있고, 서부면 동북쪽 산기슭에는 사직단이 있으며, 현내면의 북쪽에는 여제단이 향교 옆에 표기되어 있다. 또한 현풍현 동쪽의 비슬산과 궁지봉, 대견봉, 필봉 등의 봉우리, 남쪽의 대니산과 서남쪽의 화기산(花妓山), 오만면의 남산과 성황단, 황제택(黃堤澤) 뿐만 아니라 낙동강과 지천인 귀천(龜川), 차천(車川) 및 낙동강 변의 수문진, 백산진, 객기진, 대암진(臺巖津)과 도택(島澤), 응암포(應巖浦), 장진포(長津浦)가 표기되어 있다. 곽재우(郭再祐)가 정유왜란 때 쌓은 대니산의 석문산성(石門山城)을 비롯하여 서부면의 수문산성(水門山城), 비슬산의 초곡산성(草谷山城) 등도 그려져 있는데, 이 시기에 이르러 산성으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고 있었다. 서쪽의 낙동강 변에는 흥선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 당시 존치되었던 한훤당 김굉필(金宏弼)을 제향하는 도동 서원(道東書院)이 그려져 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대로를 따라 귀천시(龜川市), 차천시(車川市) 등의 정기 시장도 형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찰로는 비슬산의 유가사(瑜伽寺), 수도암, 도성암(道成庵), 소재암(消災庵)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19세기 말 현풍현 내의 각종 행정, 제의, 군사 시설, 방면(坊面)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