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14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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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邑誌附達城郡 |
영어공식명칭 | Daegu Eup-gi Bu DalSeongGun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1924년 서석태, 이종희 등이 1910년에 편찬된『대구 읍지』의 내용을 보완·간행하면서, 새로 구획된 달성군의 사례를 부록으로 추가한 읍지.
[개설]
1914년 3월 1일의 행정 구역 개편 당시에 대구부(大邱府)는 시가지를 대구부에 속하게 하고, 그 외의 지역은 현풍군과 통합하여 달성군으로 개편하였다. 이것을 반영하여 1924년 서석태(徐錫台), 이종희(李宗熙) 등은 『대구 읍지(大邱邑誌)』를 추가로 보완하여 간행하면서 달성군 내 기존 대구부의 내역을 『대구 읍지』에 함께 수록하고, 달성군에 합속된 옛 현풍군과 현풍군 소속 읍면의 연혁, 위치 지세, 행정 구역 및 교육, 호수와 인구, 토지, 명승고적 등을 부록에 첨부하였다.
[저자]
1924년 12월 20일 발행 당시 서석태가 저작 겸 발행자로 되어 있으며, 이종희가 교열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대구 읍지』 내 「대구 읍지 편집 역사(大邱邑誌編輯歷史)」에 의하면, 인촌(仁村) 우재악(禹載岳)[1734~1814]이 처음으로 읍지 2책을 편서하여 관부와 향교에 두고는 모든 이들이 볼 수 있게 하였는데 수백 년을 지나는 사이 흩어지고 없어졌기에 이것을 1908년 달성의 유학자 후담(後潭) 채헌식(蔡憲植)[1855∼1933]과 무태에 살았던 이병달(李炳達)이 흩어져 있는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며, 우재악의 읍지 간행 이후의 인물들의 행적을 더하여 인쇄, 배포하였다. 이후 1924년에 서석태와 이종희가 추가로 보완하기로 결의한 후 군수 김재환(金在煥)의 찬성을 얻어 향인(鄕人)에게 단자(單子)를 올리게 하였다. 이렇게 수합된 원고는 채헌식과 이병달의 형인 긍재(兢齋) 이병운(李炳運)[1858~1937]이 여러 구지(舊誌)를 참작하여 편집하고, 구달서(具達書), 최영환(崔永煥), 전석빈(全錫斌)이 교정을 보았으며, 이종희가 교열하여 1924년 11월 30일 대구부의 선일 인쇄소(鮮一印刷所)에서 최완(崔浣)이 인쇄하여 1924년 12월 20일에 발행하였다. 저작과 발행인은 서석태였으며, 간사는 도상우(都相宇), 이동윤(李東允), 배헌(裵瀗), 채윤기(蔡潤基)였다.
범례(凡例)에서 이 읍지의 구지(舊誌) 편집은 1910년에 끝냈으며, 15년이 지난 갑자[1924]에 발간하는 것이기에 그동안에 달라진 사실을 보충 기록하되 증속(增續) 두 글자로 구별한다고 했다. 즉 이 읍지는 1908년 간행된 것을 1910년에 편집을 한 후 1924년 간행 시에 15년간의 변동 내역을 증보하여 간행하였다. 한편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개편으로 대구부가 달성군과 대구부로 분할되고, 현풍군이 달성군에 합속되었기에 1924년의 『대구 읍지』는 대구부가 분할되기 이전의 내용을 분할된 후와 함께 대구부의 내용으로 수록하고, 부록에는 달성군 편성 이후의 내용과 합속 이전의 현풍군 내역을 기재하였다.
[형태/서지]
불분권 1책 83장으로 되어 있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계선(界線)이 있으며, 상하향 이엽 화문 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29.2×19.2㎝, 반곽(半廓)은 22.8×15.3㎝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주는 쌍행(雙行)이다. 판본은 신연활자본(新鉛活字本)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대구 읍지(大邱邑誌)'이다. 국립 중앙 도서관, 영남 대학교 중앙 도서관, 달성 문화 재단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대구 읍지』의 구성을 보면 「대구 읍지 편집 역사(大邱邑誌編輯歷史)」, 범례(凡例), 목록(目錄), 위치(位置), 계역(界域), 건치 연혁(建置沿革), 소합 제고현 연혁(所合諸古縣沿革), 형승(形勝) 산천(山川), 토산(土産), 면리(面里), 풍속(風俗), 호구(戶口), 구시 호구(舊時戶口), 조세(租稅), 구시 조세(舊時租稅), 구시 군병(舊時軍兵), 구시 성보(舊時城堡), 관직(官職), 구시 관직(舊時官職), 구시 관직 연혁(舊時官職沿革), 구시 공해(舊時公廨), 구시 학교(舊時學校), 시장(市場), 교량(橋梁), 도리(道里), 사묘(祀廟), 구시 단사(舊時壇祠), 구시 원사(舊時院祠), 능묘(陵墓), 고대 능묘(古代陵墓), 성씨(姓氏), 고적(古蹟), 정사(亭榭), 폐정사(廢亭榭), 환적(宦蹟), 교우(僑寓), 과환(科宦), 유행(儒行), 충의(忠義), 문원(文苑), 음덕(蔭德), 효자(孝子), 열녀(烈女), 사마 방목(司馬榜目), 사찰(寺刹), 폐사찰(廢寺刹), 승지시선(勝地詩選)으로 되어 있으며, 부록(附錄)은 대구부급 달성군 연혁(大邱府及 達成郡沿革), 위치급지세(位置及地勢), 행정 구역(行政區域), 호수급인구(戶數及人口), 교육(敎育), 토지(土地), 명승고적(名勝古蹟)으로 되어 있다.
범례는 모두 14개조로 되어 있는데 1910년 이래로 1924년까지 달라진 사실을 보충 기록하되 증속(增續) 두 글자로 구별하고, 오로지 구지(舊誌)를 기술하되 번다하고 불필요한 부분은 가감했다. 행정 개편으로 소속이 변경되어 타군에 소속된 풍각현(豊角縣)과 대구부로 편입된 현풍군(玄風郡)은 모두 기록해서 참고하도록 하고, 대구부가 하나는 대구부(大邱府), 하나는 달성군(達成郡)으로 편성되었으나 본래 균등한 지지임으로 소급하여 사적(事蹟)을 구별 않고 기록한다. 또한 대구부가 원래 각 현의 분합(分合)이 많아서 산천(山川), 면리(面里), 도리(道里), 성씨(姓氏) 등 달라진 것이 많으니 주(註)로 분간한다고 하여 이 책의 편집 취지와 내용, 방법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1914년 행정 제도 개편으로 달성군이 편성된 이후 가장 먼저 만들어진 읍지로서 대구부에서 분할되기 전후의 연혁과 여러 내역들을 비교할 수 있는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