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14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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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嶺南地圖 大邱府 |
영어공식명칭 | Daegubu in Yeungnam-jido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은영 |
[정의]
조선 후기 제작된 『영남지도』 가운데 대구부를 그린 지도.
[개설]
『영남지도(嶺南地圖)』는 경상도 지역 71개 군현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는 지도첩으로, 채색 필사본이다. 제작 시기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지도 내용을 통해 유추해 볼 때 영조 연간인 1745~1767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남지도』는 6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4책의 뒷부분에는 1871년에 제작된 함경북도의 「무이진도형(撫夷鎭圖形)」이 덧붙여져 있다. 제2책의 「경주 지도(慶州地圖)」, 제6책의 「하양 지도(河陽地圖)」 등의 뒷면에 '비변사(備邊司)'라는 도장이 찍혀 있어서 이 지도첩이 비변사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눈금이 있는 방안지에 지도를 그렸으며, 범례를 두어 특정한 정보를 기호화하여 표시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읍치(邑治)·면(面)·도로(道路)·강(江)·산(山)·봉대(烽臺)·수송로(烽燧路)·역(驛)·진(津)·창(倉)·서원(書院)·절[寺] 등이 표시되어 있다.
여백에 민호(民戶)·인구(人口)·양부전답(量付田畓)·실결(實結)·원회미(元會米)·신곡(新穀)·상진미(常賑米)·잡곡(雜穀)·감영미(監營米)·통영미(統營米)·좌병영미(左兵營米)·사진잡곡(私賑雜穀)·첩가잡곡(帖價雜穀)·저치미(儲置米)·각양군작미(各樣軍作米)·사군작미(射軍作米) 등과 경각사제색군(京各司諸色軍) 감영(監營)·통영(統營)·좌병영(左兵營)·좌수영(左水營) 및 각 진속(鎭屬)과 읍치(邑治)로부터 경향(京都)‚ 인근 읍계(邑界)‚ 각 면‚ 향교, 서원, 창, 봉대, 사찰, 산, 봉 등까지의 거리가 기재되어 있다. 『영남지도』는 2008년 12월 22일 보물 제1585호로 지정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1767년(영조 43) 이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영남지도』는 '비변사인(備邊司印)'이 곳곳에 있는 것으로 보아 비변사에서 군사용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제작한 것이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영남지도』「대구부」도 대구도호부에서 작성해서 비변사에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
[형태/서지]
경상도 지역 71개 군현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는 지도첩으로 채색 필사본이다. 모두 6책[77장]인데 대구부는 제2책에 실려 있다. 크기는 세로 36.3㎝, 가로 22.2㎝이다. 도곽(圖廓)에 자(子)[북], 묘(卯)[동], 오(午)[남], 유(酉)[서]의 방위가 표시되어 있다. 지도 상단에 대구부의 지지(地誌)에 관한 사항이 주기(註記)되어 있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영남지도』는 1리(里) 방안을 써서 모든 군현이 같은 축척으로 그려져 있으며, 축척은 약 5,000분의 1이다. 일반 군현도에는 방위 표시가 없을 때가 많으나 『영남지도』는 동서남북이 표시된 사각형 도곽을 만들고, 그 안에 지도를 그리고 있다. 지도 상단에는 민호(民戶)·양부전(量付田)·원회미(元會米)·상진미(常賑米)·감영미(監營米)·군(軍)·영속·진속 및 답의 결수 등과 지역 간, 각 면리, 역참, 서원, 진 등과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내용은 읍지 안에 있는 각종 건물과 향교·서원·봉대·사찰·창(倉) 등이 채색으로 그려져 있다. 읍치와 감영은 붉은색 사각형에 성곽이 있음을 표기하고, 각 면은 옅은 노란색 사각형에 방면(坊面)을 기재하였다. 읍치와 각 면 사이의 간선(幹線)은 남색 선으로, 대구부와 다른 고을 간의 역로(驛路)는 붉은색 선으로 표시하고, 사우와 서원, 사찰, 창고, 여단 등을 다양한 모형으로 표기하여 구분하고 있다.
주기 사항을 보면 대구부의 민호는 1만 2922호이며 남자 2만 5030명, 여자 3만 5209명이다. 밭의 양은 7,807결 23부로서 실제 쓸 수있는 것은 4,430결 92부이며, 논은 4,976결 54부 4속 가운데 1628결 64부만이 쓸 수 있다고 기재되었다. 읍성의 주변 둘레는 2,124보이며, 달성의 둘레는 944보이다. 서울의 각사(各司)에 소속된 색군(色軍)은 2,078명, 감영은 4,429명, 통영 2,282명, 좌병영 652명, 좌수영 711명, 부산진 15명, 각 산성 23명, 동래진 16명 등이 각기 소속되어 있다. 서울까지의 거리는 670리[263㎞]이며, 읍치를 기준으로 동쪽으로 경산의 경계까지 15리[5.89㎞], 서쪽의 성주 경계까지 40리[15.7㎞], 남쪽의 창녕 경계까지 100리[39.27㎞], 북쪽의 의흥 경계까지 50리[19.64㎞], 동남의 청도까지 50리[19.64㎞], 서남의 현풍의 경계까지 50리[19.64㎞], 서북의 칠곡이 경계까지 10리[3.93㎞] 등 대구 외곽의 경계를 기술하고, 이어서 대구부내의 각면까지의 거리를 적고 있다. 대구부에는 읍치에 동상면, 서상면이 있으며, 그 외에 관문(官門)에서 동중면, 동하면, 해서촌면, 새북촌면, 해동촌면, 해서부면, 수북면, 수동면, 수현내면, 수남면, 상수면, 하수면, 서중면, 서하하면, 서하면, 하동면, 하북면, 하서면, 하남면, 감물천면, 조암면, 월배면, 인흥면, 화현내면, 옥포면, 법화면, 성평곡면, 각북면, 각현내면, 각초동면, 각이동면까지의 거리가 표기되어 있다.
이외에도 향교, 연경 서원, 표충 서원, 낙빈 서원, 이천 서원, 남강 서원 등 사액 서원과 구암 서원, 청호 서원, 상덕사, 백원사, 하목당, 류정(柳亭) 등의 교원사정(校院祠亭)과 부창(府倉), 수성창(修城倉), 해안창, 수성창(壽城倉), 하빈창, 화원창, 풍각창 등의 창고와 법이산 봉대, 성산 봉대, 마천산 봉대 등의 봉수와 금곡현(金谷峴), 오족산, 연귀산, 침산(砧山), 마천산, 금성산, 왕산, 법이산 등과의 거리를 표기하고 있다. 진(津)에는 배가 각 1척씩 있는데 무태진, 금호강진, 이천진, 며가리진, 강창진(江倉津), 강정진(江亭津) 등과의 거리와 강폭이 기록되어 있다. 역참은 오동원참, 풍각현참, 화원현참, 하빈현참과의 거리가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지도에는 금천역(琴川驛), 범어역(凡於驛)과 사찰로 관음암, 남지장사, 대산사, 동화사, 부이사, 북지장사, 용연사, 운흥사, 임수사, 파계사 등이 표기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의 군현도 중 가장 상세한 지도이고, 각 지점까지의 거리를 지도상에서 측정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영조·정조 연간에 널리 보급된 읍지의 편찬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지도책이고, 같은 시기의 영남 전체의 지도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편, 주기 사항을 통해 지도의 내용을 더욱 상세히 알려주고 있어서 자료의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