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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재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801476
한자 景齋集
이칭/별칭 『경재 선생 문집』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전적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장유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11년[추정]연표보기 - 『경재집』 간행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고도서|문집
저자 우성규(禹成圭)
권책 14권 5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28.2㎝[세로]|19.8㎝[가로]
어미 상하 이엽 화문 어미(上下二葉花紋魚尾)
권수제 경재집(景齋集)
판심제 경재집(景齋集)

[정의]

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유학자 우성규의 문집.

[저자]

우성규(禹成圭)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유학자로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성석(聖錫), 호는 경재(景齋), 경도(景陶)이다. 1830년(순조 30)에 달성에서 태어나 1905년(고종 42)에 사망하였다. 1865년(고종 2) 만동묘 훼철령에 상소를 올려 반대하는 뜻을 밝히려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향리로 돌아왔다. 영덕 현령, 예안 현감, 단양 군수 등을 지냈으며, 후학 교육에 힘썼다.

[편찬/간행 경위]

『경재집(景齋集)』에는 서문과 발문이 없어 명확한 편찬 경위와 간행 연도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족손(族孫) 우하철(禹夏轍)의 『택와집(擇窩集)』 권2와 우효설(禹孝卨)의 『녹봉집(鹿峰集)』 권6, 1996년 간행한 국역본 『경도재 선생 문집(景陶齋先生文集)』 묘갈명 추록의 내용 등을 고려해 볼 때, 후손들이 유문(遺文)을 수습하여 정리하고 사림의 지원을 받아 1911년 목활자로 간행한 것으로 추측된다. 『경재 선생 문집』이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목활자본 14권 5책으로 되어 있다. 판식은 사주 단변(四周單邊)으로 상하 이엽 화문 어미(上下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세로 28.2㎝, 가로 19.8㎝, 반곽은 세로 20.6㎝, 가로 15.9㎝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모두 '경재집(景齋集)'이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1~2는 시(詩), 권 3~7은 서(書), 권8~10은 잡저(雜著), 권11은 서(序)와 기(記), 권12는 발(跋), 권13은 명(銘), 잠(箴), 찬(贊), 전(箋), 상량문(上樑文), 축문(祝文), 제문(祭文), 묘갈문(墓碣文), 행장(行狀), 권14는 부록(附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2의 시는 연작시, 유람시, 차운시(次韻詩), 만시(輓詩) 등이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서(書)에는 성리학에 관해 여러 학자들과 주고받은 문답 등이 실려 있다. 권8의 「내성혹문(奈城或問)」에서는 이기(理氣), 심성정(心性情), 입지(立志), 거경(居敬), 궁리(窮理), 성의(誠意), 함양(涵養), 성찰(省察), 역행극치(力行克治), 호락시비(湖洛是非), 사칠이발기발지변(四七理發氣發之辨) 등을 논하였다.

권9에서는 추모재(追慕齋)의 학규, 기정진(奇正鎭)의 「외필(猥筆)」과 「납량사의(納凉私議)」에 대해 논변하였다. 권10에는 영덕, 영월, 칠곡의 각 면 훈장에게 학문에 힘쓸 것을 유시한 글, 동계 서원(東溪書院)과 구암재(龜巖齋)에서 강의한 내용을 기록한 글, 각 지역을 다니며 강회에 참석하여 보고 들은 내용을 날짜별로 기록한 글 등이 실려 있다. 기(記)에는 노년에 퇴계 이황의 문집과 언행록을 읽으며 존모하는 마음에 경도(景陶)로 자호한 것에 대한 내용 등이, 발(跋)에는 우병종(禹秉鍾)의 『성와집(惺窩集)』」, 8대조 우배선(禹拜善)의 실기(實記) 등이 실려 있으며, 부록에는 박승동(朴昇東)이 지은 행장과 송병순(宋秉珣)이 지은 묘갈명이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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