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16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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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淵池- 龍淵寺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반송리 |
집필자 | 박은정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반송리에서 용연지와 용연사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용연지와 용연사」는 연못에서 승천하지 못한 세 마리 용의 넋을 기리기 위한 제사 의식을 치르고자 용연사(龍淵寺)라는 절이 세워지게 되었다는 사찰 유래 전설이고, 그 연못을 용의 못이라는 의미에서 용연지(龍淵池)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연못 유래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김광순이 편찬하고 국학 자료원에서 발행한 『한국 구비 문학』Ⅱ에 실려 있다. 2014년 달성 문화 재단과 달성 군지 간행 위원회에서 간행한 『대구의 뿌리 달성』에도 같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달성군 옥포읍 반송리에 '용연지'라는 못이 있다. 이 못은 꽤 깊었기 때문에 가뭄이 들어도 주민들은 이 못에서 부족한 물을 얻을 수 있었다. 매년 정월 초에는 못에서 제사를 올려 그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평온한 생활을 하며 살아가던 중 이 마을에 큰 재앙이 닥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외적의 침입이었다. 외적을 막아내려니 전방에 나가 외적과 직접 맞서 싸울 주민들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목숨을 거는 위험한 일이라 선뜻 나서지 않았다. 외적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고, 마침내 일곱 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마을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발 벗고 나섰다. 이 청년들의 목숨을 건 전투 덕분에 외적을 물리칠 수 있었지만 그 일곱 명의 청년들은 모두 못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그 맑고 청명하던 못의 색깔이 전사한 청년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세월이 흘러 일곱 명의 청년들이 죽은 지 몇 년이 지나자 그 못의 물이 이유 없이 계속 마르기 시작했고, 결국은 바닥이 거의 드러나게 되었다. 주민들은 일곱 명의 청년들이 한이 남아 이 못을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영령을 기리는 제사를 매년 크게 치러 주었다. 그랬더니 그 이후로는 신비롭게도 못의 물이 다시 불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 언제부터인가 그 못에서 소용돌이가 일더니 일곱 마리의 어린 용이 살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용들도 커져 갔다. 이 용들은 마을에 가뭄, 홍수, 화재, 기한 등의 재난이나 재해가 생길 때마다 문제를 해결해 주는 수호신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천 년이 지나자 용이 승천할 때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자 이 일곱 마리의 용들이 서로 먼저 올라가려고 다투는 일이 발생하여 못에 큰 싸움이 일어났다. 그 싸움 중에 네 마리의 용은 무사히 승천을 했지만 세 마리는 끝내 올라가지 못하고 그 못에 남아 계속 다투게 되었다. 마을의 우환을 관장하던 용들이 승천을 위한 싸움에 몰두하느라 마을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그해 농사는 가뭄으로 인해 흉년이 들고, 마을에는 전염병이 돌아 목숨을 잃는 주민들의 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먼 바다로 나가 재앙으로부터 마을을 구해 달라고 용왕님께 제를 올리게 되었다. 용왕은 그의 아들인 이무기를 지상에 내려보내 세 마리의 남은 용을 죽이도록 명령했다. 결국 세 마리의 용은 못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 후 마을 주민들이 죽은 용을 위해 제사를 올려 주었다.
이런 용을 위한 제의 풍습은 매년 이루어지면서 전승되어 왔고, 그 결과 지금의 용연사라는 절이 세워지게 되었다. '용연사'라는 절의 이름은 못에서 죽은 용의 혼을 기리기 위한 제사 의식을 치르는 데서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못을 용의 못이라는 의미에서 '용연지'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모티프 분석]
「용연지와 용연사」의 주요 모티프는 '용연지와 용연사 명칭에 대한 유래', '마을 수호신 이야기' 등이다. 용연지라는 이름의 저수지는 다양한 지역에 있으며, 「용연지와 용연사」와 유사한 전설 역시 전국 각지에 분포하고 있다. 특히 「용연지와 용연사」에 등장하는 용은 마을 수호신의 성격을 지니는 존재로서, 용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 중 긍정적인 이미지와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