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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달성 지역의 역사. 달성 지역은 청동기 문화가 발전하면서 주민의 수가 늘어나고 사회 분화가 진행되면서 몇 개의 지역 집단으로 나누어졌으며, 점차 소국[성읍 국가] 단계로 성장하여 삼한 시대에는 변한에 속하였다. 현재 그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보이는 탁순국(卓淳國)을 화원 일대에 비정하는 설이 나와 있다. 삼국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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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 경덕왕(景德王)[재위742∼765] 때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한화 정책을 펼치면서 본래 위화군(喟火郡)을 수창군(壽昌郡) 또는 가창군(嘉昌郡)으로 개칭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4 지리지 수창군 조에는 “수창 군수는 가라고 한다[壽一作嘉]”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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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에 있던 특수한 지방 통치 구역. 부곡(部曲)에 대해서 가장 명확하고 구체적인 설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주목 고적 조에 있는 등신장(登神莊)에 관한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 “이제 살펴보건대 신라가 주군현(州郡縣)을 설치할 때 그 전정(田丁)이나 호구(戶口)가 현이 될 수 없는 것은 향 또는 부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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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일대에 있던 소국. 다벌국(多伐國)은 초기 철기 시대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사회 통합을 진전시켜 나갔으며, 읍락(邑落)을 중심으로 국가를 형성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 신라 본기 파사 이사금 29년[108] 5월 조에 군대를 보내 다벌국을 정복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삼국사기』 권37 지리 조에 ‘삼국의 이름만 있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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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가 고대 국가로 성장함에 따라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할 목적으로 군현 제도를 시행하였다. 파사 이사금 시기에 음즙벌국을 취해 현(縣)을 설치하였다는 예로 보아 다사지현(多斯只縣)은 108년(파사 이사금 29) 다벌국을 병합함에 따라 109년에 다사지현을 설치하였다고 짐작된다. 반면에 무열왕 이전의 중고 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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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던 소국.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 신라 본기 파사 이사금 29년[108] 5월 조에는 군대를 보내 다벌국(多伐國)을 정복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사기』 권37 지리 조에는 ‘삼국의 이름만 있고 그 위치가 상세하지 않은 곳’ 항목에 다벌국이 포함되어 있다. ‘다벌국’은 ‘달구벌국(達句伐國)’의 별칭이다. 달구벌국은 다벌국이다. 다벌국은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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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가 고대 국가로 성장함에 따라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할 목적으로 군현 제도를 시행하였다. 이에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일대는 달구화현이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6, 경상도 대구 도호부 건치 연혁 조에 “본래 신라의 달구화현(達句火縣)인데 달불성(達弗城)이라고도 한다. 경덕왕(景德王)[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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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던 성. 지금의 대구광역시 일대는 신라 때 달벌성(達伐城) 또는 달불성(達弗城)이라 불렸다. 261년(첨해 이사금 15) 신라가 대구 일대를 정복한 뒤 달벌성을 쌓고 나마(奈麻) 극종(克宗)을 달벌 성주로 삼았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2 신라 본기 첨해 이사금 15년[261] 2월 조에 “달벌성을 쌓고 나마 극종을 성주로 삼았다”라는 기록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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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은 귀족 세력의 약화와 왕권 강화를 목표로 하여 한화 정책을 펼쳐 9주·5소경·117군·293현의 고유 지명을 한자식으로 바꾸었다. 이때 달구화현(達句火縣)이 대구현(大丘縣)으로 개칭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4 대구현 조에 “대구현은 본래 달구화현인데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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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일대에 배치된 지방군. 『삼국사기(三國史記)』 직관지에 따르면, 십정(十停)은 544년(진흥왕 5)에 설치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로 미루어 보아 삼량화정(參良火停)은 544년(진흥왕 5)보다 훨씬 뒤인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 때 새로운 지방 제도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십정은 국방상 요지인 한산주(漢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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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수성구와 달성군 가창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고려사(高麗史)』 권57 지리지 동경 유수관 경주 수성군 조의 위화군 세주(細註)에 “수성군(壽城郡)은 본래 신라의 위화군[상촌창군이라고도 한다]으로,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 때 수창군(壽昌郡)으로 고쳤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 수창군 조에는 상촌창군이라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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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는 고대 국가로 성장함에 따라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할 목적으로 군현 제도를 시행하였다. 파사 이사금 시기에 음즙벌국을 취해 현(縣)을 설치하였다는 것을 예로 보아 설화현(舌火縣)은 108년(파사 이사금 29) 다벌국을 병합함에 따라 파사왕 29년에 설화현을 설치하였다고 짐작된다. 반면에 무열왕 이전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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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수성구 중동·상동 및 달성군 가창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은 귀족 세력 약화와 왕권 회복을 목표로 한화 정책을 펼쳐 9주·5소경·117군·293현의 고유 지명을 한자식으로 바꾸면서 위화군(喟火郡)을 수창군(壽昌郡)으로 개칭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4 지리지 수창군 조에 “수창군은 본래 위화군인데 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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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중동 일대와 달성군 가창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와 달성군 가창면 지역은 신라 중고 때 주군을 설치하면서 위화군(喟火郡)으로 불렸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4 지리지 수창군 조(壽昌郡條)에 “수창군(壽昌郡)은 본래 위화군인데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수성군이다. 영현은 넷이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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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추량화현(推良火縣)은 지금의 달성군 현풍읍의 신라 때 지명이다. 삼양화(三良火)라고도 하였다. 신라가 고대 국가로 성장함에 따라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할 목적으로 군현 제도를 시행하여 지금의 달성군 현풍읍을 신라 중고 혹은 중대 때 추량화현으로 불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4 지리지에 “현효현(玄驍縣)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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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은 귀족 세력의 약화와 왕권 회복을 목표로 한화 정책을 펼치며 지방 제도를 고쳐 9주·5소경·117군·293현의 고유 지명을 한자로 바꾸었다. 이때 다사지현(多斯只縣)을 하빈현(河濱縣)으로 개칭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4 지리지 하빈현 조에 “하빈현은 본디 다사지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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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 때 왕권 강화를 위해 한화 정책을 펼치며 추량화현(推良火縣)에서 현효현(玄驍縣)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화왕군(火王郡)의 영현이 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4, 지리지에 “현효현은 본래 추량화현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현풍현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현풍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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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은 귀족 세력 약화와 왕권 회복을 목표로 한화 정책을 펼쳐 제도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때 9주·5소경·117군·293현의 고유 지명을 한자로 고쳤는데, 설화현(舌火縣)은 화원현(花園縣)으로 개칭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4, 지리지 수창군 조(壽昌郡條)에 “화원현은 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