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560 |
---|---|
한자 | 達城龍淵寺金剛戒壇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용연사길 260[반송리 88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병선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반송리에 있는 용연사에서 불사리를 모시고 수계 의식을 집행하기 위하여 건립한 단.
[개설]
달성 용연사 금강계단(達城龍淵寺金剛戒壇)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한 사리전으로 1971년 7월 7일에 보물 제539호로 지정되었으며, 높이는 2m이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달성 용연사 금강계단에 봉안된 석가모니 사리는 신라선덕 여왕(善德女王)[632~647] 때의 고승인 자장 법사가 중국에서 구법하고 돌아오는 길에 가져와 두 개의 함에 넣어 통도사에 봉안하였던 것이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임진왜란 때 통도사의 사리탑이 파괴되어 사리를 도난당하였다. 그 후 사명 대사에 의해 다시 수습되고, 또 서산 대사의 명에 따라 한 함은 태백산보현사에, 나머지 한 함은 통도사에 안치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전란과 사명 대사의 입적으로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치악산 각림사(覺林寺)에 일시 봉안하였으나 1673년(현종 14) 5월 5일 이곳 용연사에 달성 용연사 금강계단을 건조하고 봉안하게 되었다.
[위치]
용연사 맞은편 서북쪽 200m 지점에 하나의 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달성 용연사 금강계단’ 현판이 있는 보광루(普光樓) 아래 계단을 올라서면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고, 그 뒤에 달성 용연사 금강계단이 있다.
[형태]
달성 용연사 금강계단은 정방형의 이중 기단 위에 원형의 굄대가 겹으로 새겨진 정방형 굄돌을 놓고, 그 위에 석종형(石鐘形) 탑신을 올렸다. 탑신은 맨 아랫부분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통이 넓어지다가 중앙 부분을 지나면서 차츰 줄어들어 절에서 흔히 보는 범종을 그대로 닮았다. 윗부분은 구슬 무늬를 한 줄로 빙 두르고 나서 겹으로 된 연꽃무늬를 한 바퀴 돌리고, 그 위로 꽃받침 속에서 피어나는 연봉오리를 봉긋하게 새겨 마무리하였다. 상층 기단은 두툼한 갑석(甲石) 아래 사방으로 귀기둥을 세우고 각 면의 가운데 탱주(撑柱)를 새겨 사면을 여덟 칸으로 나눈 뒤, 칸마다 팔부중상(八部衆像)을 하나씩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손에 갖가지 무기를 든 채 구름을 타고 천의 자락을 휘날리며 눈을 부릅뜬 팔부중은 사리를 지키는 수문장의 위세나 힘이 넘치기보다는 그 사리를 지키게 되어 마냥 즐겁다는 명랑한 표정이다.
하층 기단은 아무런 무늬 없는 장대석을 상층보다 더 두툼하게 이중으로 단처럼 쌓아 마감하였다. 하층 기단의 네 모서리에는 원래 사천왕상이 하나씩 서 있었으나 지금은 제자리에 서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몇 차례 도난을 모면한 뒤, 아예 극락전 안으로 옮겨두었기 때문이다. 기단 주위로는 열두 개의 돌기둥을 세우고, 팔모로 깎은 돌을 그 중간에 끼워 연결한 위에 쇠창살을 촘촘히 꽂은 난간을 둘렀다. 탑을 보호하기 위하여 일제 강점기인 1934년 설치한 것으로, 현재 쇠창살은 모두 제거된 상태이다.
[금석문]
용연사에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시고 계단을 만든 과정을 적은 석가여래 부도비(釋迦如來浮屠碑)가 세워져 있다. 1676년(숙종 2)에 건립된 비에는 '세계축 오월 오일 탑성고 오척 오촌(歲癸丑五月五日塔成高五尺五寸)'이라고 하여, 1673년(현종 14)에 높이 5척 5촌의 계단을 조성하였다고 적혀 있다. 이밖에도 1754년(영조 30)에 건립한 용연사 사적비(龍淵寺事蹟碑)와 1934년에 세운 석가여래 중수비(釋迦如來重修碑)가 자리하고 있어, 달성 용연사 금강계단의 내력을 알 수 있다.
[현황]
현재 달성 용연사 금강계단은 1934년에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면서 계단을 고쳐 수리한 모습이지만, 계단 자체는 1673년에 건립한 원래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