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5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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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里 金水庵 - |
이칭/별칭 | 용리 금수암지,용리 절터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터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용리 산1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박병선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용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절터.
[위치]
용리 금수암(金水庵) 터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용리 산1번지에 있는 절터이다. 소재사(消災寺)에서 임도를 따라 오르면 청소년 야영장이 나타나고, 이곳에서 북쪽으로 400m쯤 가면 용리 염불암(念佛庵) 터가 나오는데 여기서 다시 임도를 따라 1.5㎞ 동쪽을 향해 오르다 보면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용리 금수암 터 안내판이 나온다. 이곳에서 산길을 따라 30m쯤 오르면 1994년에 달성군에서 복원한 석탑 1기가 서 있다. 이곳이 바로 용리 금수암 터이다.
[현황]
절터는 산허리의 급한 경사면을 정지하여 평행하게 2단의 평탄지를 조성하였다. 평탄지를 중심으로 건물 터의 흔적이 확인되는데 중심 건물 터 1동과 부속 건물 터 2동으로 추정된다. 부속 건물 터로는 석탑의 북쪽 20m 되는 곳에 동서 12.2m, 남북 5.8m의 장방형 건물 터와 건물 터의 서북 12m 지점에 동서 6.4m, 남북 4.2m의 작은 건물 터가 있다. 주 건물 터는 석탑에서 서쪽 38m 지점에 동서 16.4m, 남북 6.6m의 장방형 건물 터로 추정된다. 건물 터에서 남쪽으로 6m 간격을 두고 길이 27m, 높이 2.6m의 축대가 일부 허물어진 채 남아 있다. 석축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고 석축의 내부는 토석 혼축(土石混築)으로 채웠으며, 석축의 단면은 상단·하단 모두 직선형이다. 본 축대에서 서쪽으로 15m 지점에는 직경 1.6m의 원형 샘터가 있어 금수암의 식수원으로 추정된다. 절터에서 발견된 유물로는 각종 문양의 기와편과 토기 및 청자편이 있다. 석탑의 양식이나 유물로 보아 금수암의 창건은 고려 후기로 추정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현재 확인되는 절터의 규모로 보아 비교적 큰 규모의 사찰로 추정된다. 용리 금수암 터는 대견사(大見寺)로 올라가는 등산로 조성으로 인해 절터 하단부가 훼손되기도 하였으나, 전체적으로는 훼손 정도가 적어 매장 유물의 존재 가능성도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