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14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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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玄風郡邑誌 |
영어공식명칭 | Hyeon Pung Gun Eup-Ji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1899년 경상북도 현풍군에서 편찬한 읍지.
[편찬/간행 경위]
1899년 내부(內部)의 읍지 상송령에 따라 현풍군에서 편찬한 읍지이다. 조선 정부의 마지막 전국적 읍지 편찬 사업이기도 하다. 전국의 행정 구역이 개편된 이후이기 때문에 각 도의 명칭이 남도와 북도로 표기되고, 각 읍의 주부군현(州府郡縣) 체제도 변경되어 표제만으로 시대를 짐작할 수 있다. 『현풍군읍지』[1899년]는 30일 이내에 작성해서 올리라는 명령이 있어서, 1871년(고종 8)에 편찬된 『영남 읍지(嶺南邑誌)』 내 「현풍현 읍지(玄風縣邑誌)」를 저본으로 관직과 봉름, 호구, 전부조에서 1871년 이후의 변동 사항을 추록하였다. 읍 사례는 첨부되어 있지 않고 각 군별로 분책(分冊)되어 있다.
[형태/서지]
필사본으로 불분권 1책[30장]으로 되어 있다. 판식은 사주 단변(四周單邊)으로, 계선(界線)이 있으며, 어미는 없다. 크기는 세로 37.5㎝, 가로 25.3㎝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18자이다. 표제는 '경상북도 현풍군 읍지(慶尙北道玄風郡邑誌)'이며, 권수제는 '현풍군 읍지(玄風郡邑誌)'이다. 주(註)는 쌍행(雙行)으로 되어 있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책머리에 현풍군의 채색 지도가 그려져 있다. 내용은 건치 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山川)‚ 풍속(風俗)‚ 방리(坊里)‚ 호구(戶口)‚ 전부(田賦)‚ 군액(軍額)‚ 성지(城池)‚ 임수(林藪)‚ 창고(倉庫)‚ 군기(軍器)‚ 궐액(關阨)‚ 진보(鎭堡)‚ 산성(山城)‚ 봉수(烽燧)‚ 학교(學校)‚ 단묘(壇廟)‚ 능묘(陵墓)‚ 불우(佛宇)‚ 궁실(宮室)‚ 누정(樓亭)‚ 도로(道路)‚ 교량(橋梁)‚ 도서(島嶼)‚ 제언(堤堰)‚ 장시(場市)‚ 역원(驛院)‚ 목장(牧場)‚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 환적(宦蹟)‚ 과거(科擧)‚ 인물(人物)‚ 여사(女史)‚ 제영(題詠) 순이다. 이 가운데 궐액, 진보, 성지, 임수, 도서, 목장 등은 항목만 있고 내용이 없다.
『영남 읍지』에 비해 인물과 관계된 환적, 인물, 과거 등이 추록되었고‚ 여사와 제영조는 조항 자체가 신설되었다. 관직과 봉름조에는 1896년(고종 33)에 개편된 내용이 반영되었고 이외에도 '금무(今無)' 등으로 변동을 표시하였다. 또한 창고와 군기조에도 차이가 있으며‚ 호구조는 신묘식(辛卯式)[1891년]과 기해적(己亥籍)[1899년]을 모두 기록하였고‚ 전부조에는 신묘(辛卯)[1891년] 시기결(時起結)과 무술결(戊戌結)[1898년]을 기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1899년에 간행된 『현풍군읍지』는 이전의 현풍 읍지들에 비하여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일부 항목, 특히 재정과 관련한 부분에서 이전 읍지와의 비교를 통해 그 변화 양상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있다. 정부 주도로 편찬된 마지막 관찬 읍지로서 이후 편찬된 읍지들은 지방 향인들이 중심이 되어 편찬한 사찬 읍지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