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14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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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濯淸軒先生實記 |
이칭/별칭 | 『탁청헌 실기』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보라 |
[정의]
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문신인 곽황의 시문집.
[저자]
곽황(郭趪)[1530~1569]의 본관은 포산(苞山), 자는 경정(景靜), 호는 탁청헌(濯淸軒)이다. 곽황은 1556년(명종 11) 문과 별시에서 을과 1인으로 등제하여 예조 좌랑을 거쳐 예안현(禮安縣)에 파견되었다가 함양 군수가 되었다. 예안의 읍지인 『선성지(宣城誌)』에 따르면 1563년(명종 18) 토지도 척박하고 빈곤한 선성재(宣城宰)로 부임해서 1568년(선조 1) 체임(遞任)할 때까지, 읍민을 편안하게 한 선정을 베푼 지방관으로서 지금까지도 칭송되고 있다고 한다. 예안 현감으로 재직할 때에는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종유(從遊)하며 선정을 베풀었고‚ 역동 서원(易東書院)을 세우는 데도 기여하였다. 달성군 현풍읍 대리의 이양 서원(尼陽書院)에 제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곽황이 지은 글은 7언시 1편과 서찰 2편 등 3편만이 세상에 전해오기 때문에 그것으로는 완성할 수 없어서 제가(諸家)의 기록 중에서 곽황에 관계되는 것을 합하여 2권 1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세대가 오래 되어 없어질까 염려하여 후손 곽영갑(郭永甲)이 유문(遺文) 및 관련 기록을 모아 편집하고 곽종석(郭鍾錫)이 교정하여, 1900년에 『탁청헌 선생 실기(濯淸軒先生實記)』를 간행하였다. 권연하(權璉夏)의 서문과 곽영갑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탁청헌 실기』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목판본 2권 1책으로 되어 있다. 판식은 사주 단변(四周單邊)으로 계선(界線)이 있으며, 내향 이엽 화문 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세로 29.8㎝, 가로 19.7㎝이며, 반곽은 세로 18.2㎝, 가로 14.0㎝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19자이다.
[구성/내용]
권1은 시(詩), 서(書),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동제공부고침원강성(同諸公賦高枕遠江聲)」이라는 시와 「답김돈서(答金惇敍)」 2편의 서만이 곽황의 유문이다. 이외에 만(挽), 제문(祭文), 가장(家狀), 행장(行狀), 묘표(墓表), 묘갈명(墓碣銘), 묘지명(墓誌銘) 뿐만 아니라 서원 봉안문(書院奉安文), 상향문(常享文), 사림들의 통문(通文) 등이 실려 있다. 권2는 부록과 보유(補遺)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다른 사람의 글이다.
시 「동제공부고침원강성」 아래에는 김부륜(金富倫) 등 7명이 쓴 차운시(次韻詩)가 부록되어 있다. 서간(書簡) 2편은 모두 안부를 물은 데 대한 답례의 글이다. 이황은 곽황이 젊은 나이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만과 제문을 쓸 정도로 그 재능을 아꼈으며 곽황이 함양으로 옮겨갈 때에는 증별시(贈別詩)를 주었다고 하는데‚ 그 시는 가장에 제시되어 있다. 권2의 부록으로 「사곽성주궤미육치어등물(謝郭城主饋米肉雉魚等物)」 등 7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본문에서 빠진 곽황에 관련된 「역동 서원기(易東書院記)」, 『포산지(苞山誌)』, 『국조방목(國朝榜目)』 등의 기록을 초록한 보유가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탁청헌선생실기』를 통해 모범적인 목민관으로서의 곽황의 생애뿐만 아니라 이황과 그 문인들의 문학과 활동 양상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