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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800720
한자 成準得
영어공식명칭 Seong Jun Deuk
이칭/별칭 동고(東皐)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위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365년 - 성준득 판도판서 임명
활동 시기/일시 1369년 - 성준득 성절사로 명나라에 감
활동 시기/일시 1370년 - 성준득 충혜왕의 딸 장녕 공주와 함께 명나라에서 돌아옴
활동 시기/일시 1371년 - 성준득 신돈의 당화로 유배
추모 시기/일시 1857년 - 성준득 물계 서원에 배향
추모 시기/일시 1917년 - 성준득 배향하기 위해 후손들이 우남재 건립
출생지 대구광역시 달성군
사당|배향지 물계 서원 - 경상남도 창녕군 대지면 모산 1길
사당|배향지 우남재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상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창녕
대표 관직 민부상서

[정의]

고려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중윤 호장(中尹戶長)을 지낸 창녕 성씨(昌寧成氏) 시조 성인보(成仁輔)의 현손이다.

[활동 사항]

성준득(成準得)은 1365년(공민왕14) 판도판서(版圖判書)로 임명되었다. 1369년(공민왕 18) 8월 총부상서(摠部尙書)로 명나라에 성절사(聖節使)로 갔다가 이듬해 5월 돌아왔다. 이때 명나라 황제가 고려 국왕에게 보내는 친서와 관복(冠服), 악기(樂器), 배신(陪臣)의 관복, 홍무(洪武) 3년 대통력(大統曆), 그리고 육경(六經)과 사서(四書), 통감(通鑑), 한서(漢書) 등을 받아 가지고 왔는데, 악기에는 편종(編鍾) 16가(架), 편경(編磬) 16가, 종가(鍾架), 경가(磬架), 생(笙)·소(簫)·금(琴)·슬(瑟)·배소(排簫) 하나씩이었다. 당시 충혜왕(忠惠王)의 딸로 원나라 노왕(魯王)에게 시집갔던 장녕 공주(長寧公主)가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일어나는 난리 속에서 북평(北平)에서 행방불명되었는데, 공민왕의 명을 받들어 명태조(太祖)에게 공주의 행방을 수소문해 줄 것을 주청하였다. 이에 명태조가 환관들을 시켜서 찾게 하여 함께 돌아왔다. 1371년(공민왕 20) 민부상서(民部尙書)로 재직 중 신돈의 당화로 유배되었다.

[상훈과 추모]

1857년(철종 8) 물계 서원(勿溪書院)에 배향되었다. 1917년 달성군의 유가면 상동[현 유가읍 상리] 창녕 성씨 후손들이 재각인 우남재(雩南齋)를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4.25 행정지명 현행화 유가면에서 유가읍으로 변경 사실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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