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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800811
한자 金龍河
영어공식명칭 Kim Chungseon
이칭/별칭 국명(國明),남호(南湖)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0년연표보기 - 김용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74년 - 김용하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876년 - 김용하 아산 현령 부임
활동 시기/일시 1882년 - 김용하 군사마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84년 - 김용하 인천부 판관 부임
활동 시기/일시 1914년 - 김용하 9대조 김충선 부조묘 건립
몰년 시기/일시 1920년연표보기 - 김용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6년 - 김용하 배향하기 위해 청건재 건립
거주|이주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묘소|단소 김용하 묘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사당|배향지 청검재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사성 김해
대표 관직|경력 인천부 판관

[정의]

개항기 달성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사성(賜姓) 김해(金海). 자는 국명(國明), 호는 남호(南湖). 임진왜란 때의 항왜장(降倭將) 김충선(金忠善)이 9대조로, 증조할아버지는 김한보(金漢輔)이고, 할아버지는 김양준(金養俊)이다. 아버지는 김정곤(金定坤)이며, 어머니는 이민열(李敏列)의 딸 재령 이씨(載寧李氏)이다. 부인은 김장(金墻)의 딸 김해 김씨(金海金氏)이다.

[활동 사항]

김용하(金龍河)[1850~1920]는 어릴 때부터 품성이 강명(剛明)하였으며, 15세의 나이에 경사(經史)를 통달하였다고 한다. 1874년(고종 11)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876년(고종 13) 아산 현령(牙山縣令)으로 부임하였다. 1882년(고종 19) 군사마(軍司馬)를 지냈고, 1884년(고종 21) 인천부 판관(仁川府判官)에 임명되었으나 부모의 병환으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1885년 집안사람들과 의논하여 녹동재(鹿洞齋)를 건립하였다. 1892년(고종 29) 나라에서 충신·효자·열녀를 천거하라는 조서를 내리자 김용하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9대조 김충선을 현양하기 위해 삼도(三道) 진사 29인과 유생 93인의 천장(薦狀)을 가지고 상경하여 이조(吏曹)에 납부하였다. 이로써 김충선은 증직되었으며, 부조전(不祧典)을 허락받게 되었다. 이에 1914년 김충선의 부조묘(不祧廟)를 건립하였고, 또한 유계(儒契)를 결성한 뒤 실기(實紀)를 간행하였다.

[묘소]

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율곡(栗谷)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66년 후손들이 김용하를 기리기 위해 가창면 우록리에 청검재(淸儉齋)를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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