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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800944
한자 徐贊奎
영어공식명칭 Seo Changyu
이칭/별칭 경양(景襄),임재(臨齋)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25년연표보기 - 서찬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46년 - 서찬규 생원시에 급제
몰년 시기/일시 1905년연표보기 - 서찬규 사망
수학|강학지 임연당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
성격 학자
성별
본관 달성(達城)
대표 관직|경력 생원

[정의]

개항기 달성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경양(景襄), 호는 임재(臨齋). 아버지는 서홍열(徐洪烈)이다.

[활동 사항]

서찬규(徐贊奎)[1825~1905]는 1846년(헌종 12)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향리에 은거하면서 수동재(守東齋)를 지어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노력하였다. 그 후 1883년(고종 20)에 경상도 관찰사 및 암행어사의 추천을 받아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조병덕(趙秉悳)·최익현(崔益鉉) 등과 교류(交流)하면서 경전(經典)에 대한 질의와 한말의 사회·정치적 문제를 토론하기도 하였다. 일본 제국주의 침입에 대한 대비책으로 경상도 일원의 요새지에 성(城)을 수축할 것을 제의하였다. 이기설(理氣設)에 있어서는 이(理)는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기(氣) 속에 존재하여 기(氣)의 주(主)가 된다고 전제하며, 이기 일원론(理氣一元論)을 지지하였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에 임연당(臨淵堂)을 짓고, 강학 장소로 삼았다.

[학문과 저술]

『임재집(臨齋集)』은 서찬규(徐贊奎)의 시문집으로서, 1909년 이화상(李華祥)의 편집을 거쳐 1931년 신현구(申鉉求)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권두에 전우(田愚)의 서문, 권말에 이화상의 발문이 있다. 17권 7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목판본이다. 국립 중앙 도서관·성균관 대학교 도서관·장서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권1·2에 시 132수, 소(疏) 1편, 서(書) 10편, 권3∼권8에 서(書) 311편, 권9∼권12에 잡저 20편, 서(序) 26편, 권13∼권17에 기(記) 26편, 발(跋) 20편, 고축문 10편, 제문 14편, 애사 1편, 묘갈명 12편, 묘표 8편, 행장 7편, 전(傳) 1편, 부록으로 묘갈명 1편, 가장 1편, 가장후(家狀後)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서(書)는 스승 홍직필(洪直弼)과 조병덕(趙秉悳)·임헌회(任憲晦)·최익현(崔益鉉) 등에게 보낸 것이 대부분이다. 경전(經典)에 대한 질의와 한말의 정세에 관한 논술이 많다.

잡저 중 「기행(紀行)」은 홍직필이 살고 있던 경기도 노호(鷺湖)에서 출발하여 남한산성·문경 새재[鳥嶺]를 넘어 충주의 달천(達川)과 탄금대(彈琴臺)·화양동(華陽洞)·해인사 등지를 거쳐 달성의 본가에 돌아오는 동안에 보고 느낀 것을 상세히 기록한 기행문이다. 「교성보의(嶠省堡議)」는 일본의 침략에 대한 방어책을 논한 것으로, 경상도 일원의 요새지에 성을 쌓고 해안 경비에 만전을 기할 것을 주장하는 글이다. 「만필(漫筆)」에서는 하늘과 땅 사이의 조화를 이룬 것으로는 이(理)와 기(氣)임을 전제하고, 이(理)는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기(氣) 속에 존재하여 이(理)가 기의 주(主)가 된다고 역설함으로써 이기 일원론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뿐만 아니라 천체의 운행과 음양의 변화 원리를 서술하고 있다. 「잡기(雜記)」는 한말의 정치·사회적 문제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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