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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정지 나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801686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집필자 배혜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7년 4월 19일 - 「만정지 나무」 박보배로부터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2년 - 「만정지 나무」『한국 구비 문학』Ⅱ에 수록
채록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499
성격 설화|나무 훼손담|동제 금지담
주요 등장 인물 만정지 나무| 마을 사람들
모티프 유형 당산나무|동제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서 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만정지 나무」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사람들이 수호신과 같은 존재였던 만정지 나무를 신비롭게 모시고 살았으나 어떤 남자가 이 당산나무를 훼손하여 온 집안이 망했다는 나무 훼손담이자, 이로 인하여 동제를 지내지 못했다는 동제 금지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김광순이 편찬하고 국학 자료원에서 발행한 『한국 구비 문학』Ⅱ의 384~385쪽 실려 있다. 이는 1997년 4월 19일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499번지에 거주하는 주민 박보배[여, 당시 77세]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내용]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 동네 입구에는 만년 묵은 나무가 서 있었다[혹자는 만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고도 한다]. 여기서는 해마다 동제가 열렸는데, 동제가 열릴 때마다 당주가 그 만정지 나무의 가지를 잘라서 손에 들고 마을을 돌면 어느 집에 이르러 나뭇가지가 휘어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면 당주는 나뭇가지가 이끄는 대로 들어가고, 마을 사람들은 그 집에서 제사를 지냈었다. 집이 가난하건 부유하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제사 음식을 마련하고 제사를 준비했으며, 제사를 지내고 나면 그 집에 좋은 일이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 나무를 함부로 만지거나 나뭇가지를 꺾으면 그 사람에게 재앙이 닥쳐 죽게 되거나 불구가 되는 일도 많았다. 마을의 한 남자가 젊은 시절 그 나무의 잔 가지를 꺾은 적이 있었는데 후에 마을 밖으로 나가 장사를 하다가 망하고 말았다. 그 아들은 물론이고 삼대에 걸쳐 재앙이 계속되자 그의 후손 중 한 명이 홧김에 그 나무에 불을 지르고 달아나 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 그 남자의 집안은 폐가가 되어 버리고, 나무를 잃은 동네 사람들은 더 이상 동제를 지낼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만정지 나무가 있었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나무가 있었다는 자리에는 복숭아 나무 여러 그루와 복숭아밭 식당이 자리 잡고 있다.

[모티프 분석]

「만정지 나무」의 주요 모티프는 '당산나무', '동제' 등이다. 인간은 큰 자연물, 예를 들어 큰 나무나 큰 바위에 대해 수호신과 같은 경외감을 보인다. 왜냐하면 큰 자연물의 크기와 동시에 한 자리에 오랜 시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을 사람들은 큰 나무를 당산나무로 삼고, 이 수호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빌며 동제를 지냈던 것이다. 「만정지 나무」 이야기 역시 만 년이나 같은 위치에 있었던 당산나무를 경외하고, 자신들을 지켜 주는 수호신을 위해 동제를 지내는 등 큰 자연물에 대한 인간의 경외감이 드러난 설화이다. 이러한 신성한 나무를 훼손한 사람의 집안이 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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