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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8B010104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삼리리 씩실마을
집필자 송호상

[정의]

삼리1리 씩실마을을 조성한 양촌 이난미는 당시 성주지역의 대표적인 학자였던 한강정구와 함께 회현서원에 배향되고 있는 광산이씨 삼처사 집안 출신이다.

〔한강정구와 삼처사〕

조선중기 한강 정구는 동강 김우옹, 송암 김면 등과 더불어 이황과 조식을 학문을 접하면서도 성주지역을 중심으로 학맥을 형성하게 된다. 이들이 살았던 성주 일대가 낙동강의 중간 지역이라는 지리적 위치를 배경으로 당시 영남 내륙 수운의 대동맥 역할을 하고 있어서 물자만이 아니라 학술 등의 교류를 원활히 한 지역이다. 또한 이 지역은 일찍이 포은 정몽주로부터 한훤당 김굉필로 이어지는 학맥이 형성되었던 지역이었다. 이를 배경으로 정구를 중심으로 한 성주와 인근의 칠곡이나 대구지방의 유림들은 빈번한 교류를 통해 이른바 ‘한려학파’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의 중심 있었던 한강 정구를 배향하기 위해 만든 것이 회연서원이다. 회연서원에는 정구가 지역의 선배들 가운데 학문과 절개가 뛰어난 이들로 존경했던 분들이었던 광산이씨 삼처사와 동호 이서도 함께 배향되고 있다.

〔광산이씨 삼처사 〕

한강 정구는 한양에서 소개하는 혼처를 거절하면서 광산이씨 문중에 장가를 가고자 하였다. 바로 광산이씨 삼처사의 효행과 학문에 감동하였기 때문이다.

이른바 광산이씨 삼처사는 이수의 아들 삼형제인 용재(容齋) 이홍기(李弘器, 1531~1582), 육일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 1531~1592), 모재(茅齋) 이홍우(李弘宇, 1535~1594)를 말한다. 이수(李樹)는 1537년(중종 32) 무과에 급제하여 주위의 신망이 두텁더니 불행히 합포땅(현 마산)에서 요절하였다. 당시 이홍기와 이홍량은 12세였고, 이홍우는 8세의 어린 나이였다. 그럼에도 이들 삼형제는 수백리 먼 곳에서 부모가 돌아가신 소식을 듣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한잔 물도 마시지 않고 우는 소리가 끊어지질 않으니 모든 사람들이 감동하였다고 한다. 또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묘소 곁에 집을 짓고 시묘하면서 삼년동안 불과 수백보 되는 집으로 한번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 형제들은 집을 지어 살면서 문과 담장을 구별하지도 않았다. 별다른 이유가 있지 않으면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으며, 서로 간에 근심도 함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토지와 노비도 나누지 않고 힘을 합해 농사를 짓고, 사람 수에 따라 고루 나누어 생활하였다고 한다. 조상 섬기기에 정성을 다하여 사당을 정결하게 하고, 제사를 지낼 때에는 어른이나 아이, 남자 여자가 모두 모여 제사에 참여하였다.

이들 형제들은 1568년(선조1년) 나이 서른이 넘어 모친의 권유를 받들어 과거에 응시하여 모두 생원, 진사에 합격하고서는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이를 안타까이 여긴 지역의 선비들이 형제들을 천거하여 유일(유일-유생들의 추천을 받아 관직에 임명하는 제도)을 통해 이홍기는 공릉참봉에, 이홍량은 진천현감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한강 정구가 매번 삼처사의 집을 방문하면 오랫 동안 머무르다 가곤 하였다. 동강 김우옹, 송암 김면, 덕계 오건, 수우당 최영경 등 성주와 고령 일대의 선비들과 교유하였다. 그런 가운데 대구 인근의 노다암 용두정에서 한강 정구가 이홍량 형제와 이서, 이난귀, 그리고 이윤우 등과 함께 주상시회(舟上詩會)를 즐겼다. 이들은 강을 따라 도동서원을 거쳐 창녕일대의 명소를 돌면서 문인들과 함께 감상하고 시를 쓰는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한강 정구는 삼처사의 행실에 대해 ‘세상의 교훈이 될 만한데 그 말과 행동이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제자들에게 널리 전하도록 하게 하였다. 또한 삼처사의 집에 들어서면 효제(孝悌)의 마음이 절로 나온다 하였다.

이들 삼처사는 동호 이서와 함께 성주의 회연서원에 배향되었고, 또 본군 성산면 고탄동 봉양사(鳳陽祠)에 모시고 있다.

〔참고 문헌〕

李禹鉉 主幹, 『光山李氏世稿 國譯全』 (西大邱印刷所, 1986)

추제협, 「회연서원의 경연과 유현들」 (『한국학논집』 57집, 2014년 12월)

정병석, 권상우, 「대구권 성리학과 의병활동」(『철학논총』 79집, 2015)

「[낙동강 물레길] ⑥정구 선생의 봉산욕행」(『매일신문』, 2012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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