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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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鐵院橋 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현풍중앙로 130[성하리 235-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동락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성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수철원교의 건설 과정이 새겨진 비.
[개설]
비문에 의하면 수철원교(水鐵院橋)는 현풍현의 서쪽에 있는 다리로 1706년(숙종 32)에 중수되었다가, 1736년(영조 12) 다리가 붕괴되어 1760년(영조 36)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포산지(苞山誌)』에 “풍제원교는 현 서쪽 1리에 있다. 지금은 수철원교라 부른다[豊濟院橋縣西一里今名水鐵院橋]”, 『교남지(嶠南誌)』에 “원교는 군의 남쪽에 있다. 예전에 수철교라 불렀다.[院橋在郡南舊稱水鐵橋]”라고 기록되어 있다.
[위치와 현황]
달성 군민 체육관 동쪽 숲에 현풍 현감 등의 선정비가 2열로 위치하고 있는데, 1열의 왼쪽 첫 번째에 비가 있다. 선정비 등은 1997년 현재의 장소에 연도별, 관직별로 분류하여 놓은 것이다. 수철원교 비는 현풍천 주변 도로 확장 공사 중 땅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며, 1997년 이후 이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판단된다. 비는 상태가 상당히 양호한 편이며, 비문도 육안으로 잘 판독된다.
[형태]
비는 2단의 비좌 위에 규수형(圭首形)의 비신을 올린 형태이다. 비좌는 비를 옮기면서 새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규모는 비신 높이 182㎝, 너비 67~62㎝, 두께 35㎝이다.
[금석문]
전면 상부에 '수철원교 비명(水鐵院橋碑銘)'이라 적혀 있다. 전면의 비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풍현의 서쪽에 다리가 둘이 있으니 풍제교와 수철교이다. 풍제교가 무너졌다가 다시 보수된 것은 이미 앞의 비석에 기록하였는데, 수철교의 흥폐에 관한 것은 마치 끝자리를 기다린 것 같다. 지난 병술년[1706년]에 돈녕 조도보 공이 이 고을에 현감으로 부임하여, 다리가 무너져서 백성들이 건너다니기가 불편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자신의 녹봉을 떼어 그것을 수리하였다. 병진년[1736년]에 물이 막혀 다리가 붕괴되자 나무로 다리를 대신하였는데, 그마저도 물결에 휩쓸려 뒤틀려서 폐단이 날로 불어났다. 병자년[1756년]이 되어 김광태 공이 현감으로 부임하여 5년 동안 다스리면서 온갖 무너진 것을 모두 일으켜 세웠다. 또, 이 다리도 건설하였는데 봉급을 떼어 자금에 보태고 권선문(勸善文)을 돌려 재목을 모았으니, 아! 훌륭하도다. 이때의 관찰사 조엄 공은 바로 돈녕공의 손자이다.
조부의 옛 자취를 더듬어 감격하고 선조의 뜻을 이어 계승하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천 냥의 동전을 대출하여 네 곳 절의 승려들에게 주어서 경진년[1760년] 봄에 일을 시작하였다. 재목과 기술자가 모두 갖추어졌으나 고을의 운수가 불행하여 김 공이 세상을 떠나니 백성들이 슬퍼하며 공사를 중지하였다. 그 후 4월 맹하(孟夏)에 신첩 공이 마침 새로 부임하여 아전들을 단속하고 다시 공사를 독려하여 며칠만에 일을 마무리하였으니, 아!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었는가? 병술년에 중수하고 다행히 경진년에 다시 세웠으니 흥폐에도 운수가 있고 조손(祖孫)이 서로 창건하였으니, 우연히 된 일이 아니로다. 이 일을 한 분이 누구던가? 관찰사 조엄 공이 베푸신 것이요, 어진 현감들의 공로로다. 이에 명문을 짓는다. 비슬산은 높고 높으며 구천은 길고 길도다/ 홀연히 무지개 같은 다리 완성되니 완연히 꿈틀대는 용과 같네/ 위대한 세 분의 업적으로 만백성이 건너다니기에 편리하도다/ 공적을 기록하여 후세에 알리려고 여기 큰 돌에 이 일을 새기노라. 숭정 기원 후 세 번째 신사년[1761년] 8월 상한에 쓰다[縣之西橋有二命焉曰豊濟曰水鐵也豊濟之壞補已記前碑水鐵之興廢若待季所粤丙戌敦寧趙公道輔來莅玆縣憫橋之圯病民之涉捐廩而修之丙辰之年水閼橋壞代之以木隨漂旋改爲弊日滋逮夫丙子金公光泰莅任五載俱興百廢又營此橋捐俸補資勸文鳩材猗歟巡相趙公曮卽敦寧公之孫也追感舊蹟念切繼述貸千緍銅給四寺僧始於庚辰之春材倕咸齊邑運不幸金公棄世民哀停役越四月孟夏申公㫸適新莅勅吏復董斷手不日嗟呼幾難丙戌之重修幸有庚辰之復興興廢有數祖孫相刱理非偶然是誰之爲巡相之賜也賢侯之功也銘曰 瑟山峨峨 焂成長虹 偉三公蹟 記功詔後 龜川身身 宛若游龍 利萬民涉 刻此大石 崇禎紀元後三辛巳仲秋上浣書]
[의의와 평가]
수철원교 비는 조선 후기 현풍현의 교량 건설 과정을 새긴 비로 현풍현의 옛 모습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로 기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