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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801235
한자 花園聖堂
영어공식명칭 Hwawon Seongdang|Hwawon Catholic Church
이칭/별칭 화원 천주교회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비슬로522길 65[천내리 847]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엄진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8년 6월 12일연표보기 - 화원성당 설립
최초 설립지 천내 공소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
현 소재지 화원성당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비슬로522길 65[천내리 847]지도보기
성격 성당
설립자 천내 공소: 김바르톨로메오|화원성당: 초대 주임 신부 서정길[요한]
전화 053-632-0014
홈페이지 화원성당(www.dghw.or.kr)|화원성당(http://cafe.daum.net/martinus)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에 있는 천주교 대구 대교구 소속의 성당.

[개설]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 지역 최초의 공소인 조암 공소가 그 기원이다. 이후 조암 공소가 서산 공소로 분리되고 다시 천내 공소가 만들어졌으며, 교우 숫자의 증가함에 따라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주보성인은 예수 성심이다.

[설립 목적]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천내 지역 교우들의 종교 활동을 돕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변천]

화원성당은 1938년 모 본당인 남산 본당에서 분가하여 설립되었다. 성당의 뿌리는 1906년경에 만들어진 조암 공소이다. 조암 공소는 1906년경 달성군 월배면 상동[현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 광수골에서 박상태[루도비꼬] 신부의 할아버지와 박부금[바오로, 화원 본당 9대 회장 박종환의 증조할아버지] 가족을 비롯하여 몇몇 가족들이 모여 만든 것이다. 공소에서는 대구 성당의 김보록(金保祿)[바오로,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 신부를 초대하여 성사를 보았다. 이후 수년간 공소는 유지되었다.

1913년경 조암 공소의 교우가 증가하자 서산 공소를 새로 만들어 분리시켰다. 분리되어 나온 가족들은 박분도 등 20세대 정도였다. 서산 공소는 화원 천내동 교우들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1918년 상여계(喪輿契) 활동을 통해 공소의 교세는 더욱 확대되었다. 이러한 천내동 교우의 증가를 배경으로 박기근이 기부한 대지에 초가집을 지어 천내 공소를 만들고 분립하게 되었다. 이 천내 공소가 화원 본당의 근원이 되었다. 당시 공소 회장은 김바르톨로메오이다. 천내 공소는 전교 활동의 핵심 조직인 상여계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그 명칭을 친애회(親愛會)로 개편하였다. 친애회의 초대 회장은 박성수[요셉]이었다.

천내 공소의 교세가 확대되는 가운데 1926년 공소 부인회가 조직되었다, 초대 회장은 백루치아였다. 부인회에서는 성당 건립을 위한 대지 확보를 목적으로 ‘대지 확장 기금 마련 성미(聖米) 모으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통해 현재 성당이 있는 천내동 488번지의 대지를 구입하였다. 1927년경에는 천내 공소에서 야학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하였다. 박귀업과 박창생의 주도로 십여 명의 학생을 모아 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신앙 교육까지 하였다. 이를 통해 1928년 11월 공소 청년회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1930년 공소 청년회 체육 부장이었던 정남수[스테파노]의 아버지였던 정차갑[요셉]이 대지 약 1,322㎡를 헌납하였고, 여기에 초가집[현 교육관 자리]을 지어 공소로 활용하였다. 당시 천내동 공소는 대구 본당의 수(首) 공소로서 대구 본당 신부가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판공을 보아주었다. 당시 달성군 옥포면 강림동에 살면서 천내동 공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백남국[요한] 부부와 나판주[안또니오] 등은 활발한 전교 활동을 통해 교세를 확대시켰다. 그런 가운데 백남국의 집에 공소를 열고 모이기 시작하였다. 이를 계기로 강림 공소가 천내동 공소에서 분리되었다.

1920년 천내 공소 설립 이래로 1936년에 이르러 모본당이 대구 계산동 주교좌 본당에서 남산 본당으로 관할이 바뀌었다. 본당 설정 과정에서 남산 본당의 방약종 신부의 후원으로 현대식 건물의 신축과 함께 본당 승격을 계획하였으나 무산되었다. 이후 교우들의 노력과 공소 회장 박성만[스테파노]이 성당 건립비의 절반을 부담하여 건립 기금을 마련하였다. 이를 통해 1938년 5월 성당 건물을 완공하고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6월 12일 서정길[요한] 신부가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하였다. 서정길 신부는 사제 서품과 동시에 첫 사목지로서 화원성당에 부임하게 되었다. 후에 서정길 신부는 주교 성성(成聖)과 대주교 승격으로 교구장이 되었다.

한국 전쟁 직후인 1954년 7대 서정도[빌라도] 주임 신부가 부임해 와서 성당 증축에 노력하였다. 그런 가운데 대구 화원 초등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부대의 도움을 받아 증축에 필요한 물자를 무상으로 지원받았다. 이로써 성당을 확장하였고, 종각도 세웠다. 이 증축된 건물이 1984년 새 성당이 건축될 때까지 사용되었고, 지금은 교육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금의 새 본당은 달성군 화원읍 본리동 출신 사업가 박근수[시몬]가 건축비 전액을 헌납함으로써 완공될 수 있었다. 1984년 11월 25일 이문희 주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새 성당 및 사제관 수녀원 건물 등에 대한 축성식을 가졌다. 화원성당은 동명 성당, 범물 성당 등을 설계한 건축가 김무권의 작품이다. 이러한 화원성당에서 설립한 공소로는 옥포 공소, 현풍 공소 등이 있다. 옥포 공소는 현재 성산 성당 소속의 공소가 되었고, 현풍 공소는 현풍 성당으로 승격되었다. 1988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화원성당은 본당 50년사 발간, 가톨릭 신용 협동조합 창설 등의 행사를 하였다. 화원성당 출신 성직자, 수도자로는 박상태, 박두환, 조환길, 이준건 등이 있다. 조환길은 현재 천주교 대구 대교구 교구장을 맡고 있다. 2016년 2월 현재 김성태[엠마누엘] 신부가 주임 신부로 있고 수녀로 김제너 수녀가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종교 활동과 더불어 경로 잔치와 같은 지역 봉사 활동에도 적극 힘쓰고 있다.

[현황]

현재 총 1,292명[남 564명, 여 728명]의 신도가 등록되어 있다. 화요일·목요일 오후 7시 30분, 수요일·금요일 오전 10시에 평일 미사가 있다. 토요일에는 오후 3시 30분에 어린이 미사가, 오후 7시 30분에 중고등부 미사가 있다. 일요일에는 오전 10시 30분에 교중 미사가, 오후 7시 30분에 청년 미사가 각각 진행된다.

[의의와 평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 지역의 대표적인 성당으로서 달성 지역의 천주교 역사를 파악하는데 주요한 사료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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