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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폴리스 DGIST 부지 유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801765
한자 - 敷地 遺蹟
영어공식명칭 The Ancient Site at DGIST of Daegu Technopolice, Dals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테크노중앙대로 333[상리 50-1]
시대 선사/청동기,고대/초기 국가 시대,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런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창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8년 6월 2일~2009년 9월 25일 - 테크노폴리스 DGIST 부지 유적 한국 문화재 보호 재단이 발굴 조사
현 소재지 테크노폴리스 DGIST 부지 유적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테크노중앙대로 333[상리 50-1]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한국 문화재 보호 재단 - 경상북도 경주시 용강상리길 40-9[용강동 1013-3]
성격 유적
면적 13,956㎡[Ⅰ-1구역]|2,828㎡[Ⅰ-2구역]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 대구 경북 과학 기술원 내에 있던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적.

[위치 및 현황]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에 있는 대구 경북 과학 기술원[DIGST] 정문 우측 편에 종합 체육관과 테니스장·풋살 경기장이 있는데, 테니스장과 풋살 경기장 일원이 테크노폴리스 DGIST 부지 유적 Ⅰ-1구역이고, 입구 쪽 도로 일원이 테크노폴리스 DGIST 부지 유적 Ⅰ-2구역이다. 테크노폴리스 DGIST 부지 유적 Ⅱ-1구역과 테크노폴리스 DGIST 부지 유적 Ⅱ-2구역은 연구 행정동 등 건물이 집중된 곳이다. 조사 구역의 지형은 크게 북쪽의 쌍계리 고분군(雙溪里古墳群)과 이어져 형성된 구릉의 남쪽 비탈과 남쪽 평지 부분, 북쪽과 서쪽 구릉 사이의 곡부, 서쪽 구릉의 서쪽 비탈 일부이다. 조사 전 곡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과수원과 논밭 등의 경작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테크노폴리스 DGIST 부지 유적은 대구 테크노폴리스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대구 경북 과학 기술원 건립 공사로 인해 한국 문화재 보호 재단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2007년 2월 2일부터 그해 6월 30일까지 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에 의해 지표 조사[726만 8853㎡]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조선 시대의 유적이 확인되었고, 당시 치마거랑 마을 북서쪽 구릉 정선부와 그 비탈을 따라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어 주 고분군의 대부분은 공원 지역으로 보존되고 주변 지역은 시굴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시굴 조사는 표본 시굴 조사[4만 7500㎡]와 일반 시굴 조사[8만 655㎡] 지역으로 구분되어 실시되었는데, 토지 미보상 및 지장물 등으로 인해 조사가 지연되면서 먼저 유적이 확인된 지역을 발굴 조사로 전환하고 시굴 조사와 병행하면서 조사가 진행되었다. 표본 시굴 조사 지역에서 확인된 건물 터 1동과 유물 포함층은 먼저 발굴 조사[514㎡]되었고, 일반 시굴 조사 지역은 건물 터[Ⅰ-1구역: 1만 3956㎡, Ⅰ-2구역: 2,828㎡]와 고분군[Ⅱ구역, 1만 5340㎡] 지역으로 나누어 건물 터 지역은 한국 문화재 보호 재단에서 2008년 6월 2일부터 2009년 9월 25일까지, 고분군 지역은 한빛 문화재 연구원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발굴 조사는 일반 시굴 조사 지역 남동쪽 지역을 Ⅰ-1구역, 중앙부의 남쪽을 1-2구역으로, 표본 시굴 조사 지역 북동쪽을 Ⅱ-1구역, 남서쪽 지역을 Ⅱ-2구역으로 나누어서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 Ⅰ-1구역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 2동, 삼국 시대~통일 신라 시대의 기와 가마 1기와 추정 절터 관련 유구 13기, 고려 시대~조선 시대 추정의 객사 터 관련 유구 17기와 기타 건물 터 관련 유구 24기·분묘 유구 8기, 고상식 건물 터 1동 등 총 66기가, Ⅰ-2구역에서는 건물 터 1동과 배수로 1기·석렬 유구 2기·매납 유구 2기·우물 1기·삼가마 1기가, Ⅱ-1구역에서는 고려 시대의 건물 터 1동이, Ⅱ-2구역에서는 건물 터의 하부 잔해로 추정되는 유물 포함층 1개소가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는 모두 2동으로 조사 구역의 중앙부에서 남쪽으로 치우쳐 서로 인접해 위치한다. 1호는 남동쪽 모서리 부분만 잔존하며, 평면 형태는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2호는 길이 1,070㎝, 너비 370㎝, 깊이 6~10㎝ 정도로 비교적 대형의 집자리이다. 내부 시설로는 화덕 자리와 주혈이 확인되며, 화덕 자리는 원형과 타원형의 2개소가 북쪽으로 편재되어 확인되었다. 잔존 상태가 불량하여 정확한 양상을 파악할 수 없으나 이단병식 돌칼[석검] 등의 출토 유물로 볼 때 청동기 시대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추정 절터 관련 유구는 대부분 Ⅰ-1구역의 남동쪽에 위치하며, 건물 터 3동과 탑 터 1기·추정 석등 터 1기·원형 석조 유구 1기·출입 시설[문 터] 2기·기단 석렬과 석렬 유구·담장 터 및 배수로·와적 시설 각 1기 등 모두 13기가 확인되었다. 추정 절터는 일부 추정 객사 터와 중복되어 있어 정확한 영역을 구분하기에 어려움이 있고, 잔존 유구의 양상만으로 가람 배치를 추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성격이 명확한 탑 터를 중심으로 추정 석등 터, 출입 시설 등이 대체로 남북 일직선상으로 확인되었다. 유물은 고신라 시대 막새도 소량 출토되었으나 통일 신라 시대 막새 및 기와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출토 유물로 볼 때 삼국 시대에 창건되어 통일 신라 시대에 전성기를 이룬 것으로 판단되며, 10세기 말~13세기 초로 추정되는 '천인사(天人寺)' 명문와가 1점 출토되어 고려 시대까지 존속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와 가마는 추정 절터와 동 시기의 기와류가 출토되어 추정 절터에 기와를 수급하기 위해 제작된 가마로 보인다. 추정 객사 터는 Ⅰ-1구역의 북동쪽에서 주로 확인되었으며, 건물 터 9동과 담장 터 1기·배수로 6기·집수장 1기 등 총 17기가 확인되었다. 특히 4호[정청]·5호[동익헌 터] 건물 터 일대에서 '현풍현 객사(玄風縣客舍)' 명문와가 출토되어 현풍현(玄豊縣)의 객사로 추정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테크노폴리스 DGIST 부지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조선 시대의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특히 추정 객사 터는 달성군 현풍읍 상리 일대에서 최초로 발굴 조사된 객사 터로서 당시의 현풍현 객사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11.14 행정지명 현행화 현풍면 -> 현풍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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