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5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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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達城 玄風 石氷庫 建成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1길 36[상리 63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동락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빙고 건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개설]
달성 현풍 석빙고 건성비는 1982년 달성 현풍 석빙고 주변 보수 작업 때 발견되었다. 비에는 달성 현풍 석빙고 건립 연도와 건립에 관련된 인물들이 기록되어 있다. 달성 현풍 석빙고 건성비에 따르면 빙고는 1730년(영조 6)에 건립되었다. 현감(縣監) 이우인(李友仁)을 비롯하여 도감(都監) 곽재완(郭在完), 감관(監官) 곽천숭(郭天嵩), 색리(色吏) 이동영(李東榮), 승려 호왕(好往)[비문이 결락되어 직책은 알 수 없다], 사령(使令) 김만천(金萬千), 호장(戶長) 김성달(金聲達)과 나규무(羅奎武) 등이 달성 현풍 석빙고 건립에 관여하였다.
[위치와 현황]
달성 현풍 석빙고 건성비는 2013년 당시 석빙고의 반대쪽에 위치한 현풍 문화원 북쪽의 좁은 길 위에 비스듬히 기대어져 있었다. 이후 이곳이 대구 경북 과학 기술원과 연결되는 도로로 확장, 포장되어 2015년 달성 현풍 석빙고 앞으로 이건되었다. 비는 현재 하부가 매몰되어 있으며, 비문은 전면 판독은 가능하나 후면은 마멸이 심해 육안으로 판독이 어렵다.
[형태]
비는 규수형(圭首形) 비신만이 있는 형태로 약간 상광하협형이다. 규모는 비신 높이 105㎝, 너비 49.5~42.5㎝, 두께 28.5~27.5㎝이다.
[금석문]
앞면 오른쪽에 '석빙고 건성비(石氷庫建成碑)'라 쓰여 있고, 앞면 가운데에 “현감 이후 등내(縣監李侯 等內)”라 적혀 있다. 등내(等內)는 벼슬아치가 벼슬을 지내는 동안을 이르던 말이다. 앞면 왼쪽에는 “숭정 기원 후 이 경술 십일월 일(崇禎紀元後二庚戌十一月日)”이라 적혀 있다. 경술년은 1730년이다. 뒷면에는 “도감 유학 곽재완(都監幼學郭在完) 감관 간관 곽천숭(監官刊官郭天嵩) 색리 율생 이동영(色吏律生李東榮) □수통정승 호왕(□手通政僧好往) 사령 김만천(使令金萬千) 호장 김성달 나규무(戶長金聲達羅奎武)” 등이 적혀 있다.[『달성의 금석문』에서 전재함]
참고로 1742년에 건립된 창녕 석빙고의 비문을 소개[최진욱 판독, 노효경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앞면 오른쪽에는 “석빙고 비(石氷庫碑) 감관(監官) 김정일(金鼎一) 홍중채(洪重采)”라 쓰여 있고, 앞면 가운데에는 “현감 신후서 등내 영건(縣監申侯曙等內營建)”이라 적혀 있다. 앞면 왼쪽에는 도색호장하이도필(都色戶長河以圖筆) 도감 유학 강세복(都監幼學姜世復) 율생 조재갑(律生曹再甲)“이라 적혀 있다. 뒷면에는 “고직(庫直) 하선갑(河先甲) 석수(石手) 김기운(金己云) 숭정 기원 후 재임술 이월 초일 시 사월 초십일 필(崇禎紀元後再壬戊二月初一日始四月初十日畢) 사령최가음암회(使令崔加音岩囘) 오암회(吳岩回)”라 적혀 있다. 즉, 숭정 기원 후 두 번째 임술년[1742년] 2월 1일에 역사(役事)를 시작하여 4월 10일에 마쳤다는 내용이다.
[의의와 평가]
달성 현풍 석빙고 건성비에는 현풍 석빙고의 건립 연도와 관련자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어 현풍 석빙고의 건립 과정을 파악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